하나님에 대한 고의적인 반역 행위를 구약 율법에서는 대속 받지 못하는 죄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 신성을 모독한 죄는 그 당시에 사형으로 다스려졌고(레 24:10-23), 신약에 와서 성령에 대한 모독 즉, 성령의 사역에 의해(마 12:28), 입증된 그분의 존재를 항구적으로 거부하는 행위를 최악의 죄로 규정하고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말합니다(마 12:31).  사실 진정한 고백과 회개가 있는 곳에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지만(요일 1:7-9), 용서받을 수 없는 영원한 죄가 하나 있다면(막 3:29), 그것은 바로 성령을 훼방하는 것으로 이 죄는 예수님 사역 배후에 있는 성령의 능력을(눅 5:17), 철저히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사함 받을 수가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눈으로 빛을 보면서도 여전히 어두움을 선호하는 사람들은(요 3:19),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고 또한 이 성령의 역사에 대한 고의적이고 지속적인 거부는 그분에 대한 ‘신성모독’이라는 것입니다(눅 12:10).  이 죄에 대해 Calvin은 『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성령의 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바알세불’이라는 이름으로 예수님을 중상하였다. 이것이 훼방의 영이다. 즉 인간이 대담해져 하나님의 이름을 의식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성령이 제시하는 빛을 고의로 끄려고 힘쓰는 자는 죄인들에게 회심할 기회를 주는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끝 날에도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신학자나 목회자들 중에 ‘용서 받을 수 없는 영원한 죄’(막 3:29), 즉 ‘성령을 훼방하는’ 죄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동안에 지을 수 있는 유일한 죄라고 단정지어 말하기도 하고 그리고 죽을 때까지 지속적인 불신, 예를 들면 전도자를 통해 복음을 들었지만 끝까지 믿지 않고 죽은 사람이 범하는 죄라고 규정하거나 심지어 심각한 배교 구절인 히브리서 6장4-6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죄는 오직 거듭난 사람들만이 범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설득력이 없고 성경 본문에서 의미하는 문맥과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누군가 죽을 때까지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면 물론 그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요 8:24-25),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의미하느냐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믿지 않는 사람을 두고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구절들은 없고 불신앙을 소유하고 끝끝내 예수님을 거부한 사람을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죄로 규정하는 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에 대한 확실한 답변을 주지 못할뿐더러 이 죄가 일반적인 ‘불신’(막 6:3)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모독하는 것’(마 12:31)과 ‘성령을 훼방하는 것’(막 3:29)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에 대한 죄를 염두에 두고 있는 본문 문맥과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먼저 이 죄에 대해 공관복음서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성령을 힘입은(마 12;28), 예수님의 사역에 명확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마태복음에서는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쳐주신 직후에(마 12:22), 마가복음에서는 많은 병든 자들을 고쳐주시고 난 후에(막 3:10-12), 그리고 누가복음은 벙어리 귀신을 내어 쫓고 고쳐주신 직후에(눅 11:14), 바리새인들로부터 공격적인 비난을 받았는데(막 3;22), 분명 예수님은 ‘성령을 힘입어’(마 12:28),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씀하셨지만 바리새인들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마 12:24), 쫓아낸다고 적대적인 주장을 합니다.  쉽게 말하면 바리새인들이 의도적으로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현저하게 나타나는 성령의 능력 있는 역사를(눅 5:17), 귀신의 왕 ‘바알세불’로(왕하 1:6), 치부해 버린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너무 분명하게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실존을 증거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의도적이고 악한 마음으로 말로 성령을 훼방하고 자신의 사역을 귀신의 능력으로 간주하는 것은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막 3:29), 죄라고 경고합니다(마 12:31-32).  Louis Berkhof은 이 죄를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립니다.  “이것은 성령의 인격성에 대항하는 죄라기보다는 객관적으로 그리고 주관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드러내는 성령의 공적 사역을 거부하는 죄이다”

 

Jonathan Edwards도 성령을 훼방하는 죄에 대해 마태복음 12장22-32절을 인용하여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그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을 거역하는 사함 받을 수 없는 끔찍한 죄라고 말하면서 『부흥론』에서 이렇게 경고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이 죄사함을 받을 수 없다고 비난하셨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부에 대한 사악한 불경죄이거나 혹은 모르고서 성자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모르고 한 것은 사함 받을 수 있지만), 자신들이 분명히 느끼고 있으면서도 사특하게 영적 실재를 고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성령을 거역하는 죄는 빛에 대항한 고의적 죄였다. 그것은 자기도 모르게 범할 수 있는 죄가 아니었다. 사함 받을 수 없는 이유는 그 죄가 영적자살에 준하는 행위로서 드러난 진리를 최종적이고도 고의적으로 거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당시 영적으로 새롭게 일어나는 부흥을 악의적으로 반대하고 비난하며 마귀의 역사라 부르는 자들은 이제 한 가지 일만 더하면 사함 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는 셈인데 그 일이란 자신들의 양심의 찔림과 상반되는 짓을 하는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이렇게 촉구합니다.  “부흥이 임한 곳을 찾아가서 그것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부지런히 탐문하라”

 

따라서 오늘날도 예수의 이름으로(행 3:6-9),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사역하는 사람들을 여러 가지 이유(악의, 질투심, 교만)로 그들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고 그 역사를 마귀의 능력에 귀속시키는 현대판 바리새인들이 있는데 이들은 이미 스스로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역을 통하여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들을 바리새인들은 주님 앞에서 직접 목격함에도 불구하고(눅 5:17-26), 이것을 거부한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현대판 바리새인들 역시 예수의 이름으로 분명하게 나타나는 표적과 기적들을 눈으로 보면서도 신학적으로 틀렸고 신앙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비주의자이거나 감정주의자 사람들이 개인의 관계와 체험을 성경 말씀보다 더 중요시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체험해 보지 못한 부분에 대해 적대시 하거나 자신이 배운 신학/신앙만이 성경적이고 자신의 견해만이 옳다고 주장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체험해 보지 않는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어떤 주장을 내세우지 말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참된 성도라면 육신이 연약하여 경박한 말과 경솔한 행동을 통해 성령을 근심시킬 수는 있지만(엡 4:30),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역(행 16:18), 즉 은혜를 주시는 성령을 모독하지는 않습니다(히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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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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