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율법관에 빠져 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동시에 거짓된 은혜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은혜는 율법과 별개의 것이며

율법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도덕률 폐기론’이라 불러지는바

되는대로 태만하여 빈둥거리며,

죄 짓는 생활을 살기 위해

은혜론을 악용하는 사람들의 태도라 하겠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나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문제가 없다.”라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며 이렇게 말합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이것은 절대 그릇되고 거짓된 은혜관입니다.

은혜의 전 목적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로 율법을 지킬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말하는 소위 그 은혜가

(여러분이 받았다고 말하는 그 은혜),

여러분으로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한다면

여러분은 은혜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심리적 체험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은혜란 무엇입니까?

사람을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여 그로 율법을 지킬 수 있게 하며,

그리스도가 의로웠던 것처럼 의롭게 될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은사)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율법을 완전히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는 그것인 것입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의 계명을 지키기로 열망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요 14:21).


이 두 가지는 분리시켜서는 결코 안 됩니다.

은혜는 감상적인(sentimental) 것이 아닙니다.

성결은 하나의 체험도 아닙니다.

우리로 율법을 사랑하며,

이 율법을 지키도록 의욕 하게 하는

이 새 마음과 성향(disposition)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능력으로 우리로 하여금 율법을 성취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9).


이 말씀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기까지 삼년의 짧은 세월 동안

그분과 함께 있었던 제자들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영원하고 영속적인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다시 마태복음 7장에서 강력히 주장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입니까?

십계명과 도덕법입니다.

이 법들은 폐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인은 하나님을 미워하며 그의 법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율법에 굴복합니다.

기독교인 이렇게 되기를 원하며 이렇게 될 능력을 받았습니다.

성경 로마서 8장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이드 존스 『산상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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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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