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열두 명을 ‘사도’라고 부르는데(마 10:2), 이 사도라는 명칭은 문자적으로 ‘사자’(빌 2:25)와 ‘사신’(고후 5:20)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요 13:23)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복음서 기자들은 이들의 사역을 설명할 때 ‘제자’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막 6:12), 복음서에 나오는 이 기본적인 단어의 80퍼센트 이상은 오직 이 열 두 명의 사도들을 지칭하는 데만 사용되었습니다(눅 9: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서 ‘사도’라는 용어를 더 광범위하게 사용하셨는데, 예를 들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다메섹에서 직접 대면한 바울과(행 9장),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포함시키셨습니다(행 14:14, 고전 15:7, 갈 1:19, 살전 2:6).  먼저 사도적 직임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사람에 의해 확증되는 것을 성경을 통해 찾아볼 수 있는데 사도행전 13장에 나오는 안디옥 교회의 다섯 사람들 모두는 선지자이거나 교사이지만 바나바는 선지자가 아닌 교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선지자처럼 환상과 계시를(민 12:6), 받았다는 구절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고, 반면에 바울은 계시를 받아(엡 3:3), 신약성경 거의반 정도를 기록한 것을 볼 때에 선지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갈 1:11-12).  즉, 바울은 선지자겸 교사이고(딤후 1:11), 바나바는 선지자가 아닌 교사라는 것을 말해주는데(행 15:35), 이것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역의 범위였습니다.

 

사실 이들은 성령께서 따로 세워 보내심을 받을 때까지 아직 사도적 직임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다음 구절에 보면 두 사람이 성령을 통해 사도로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즉, 성경은 그들이 성령이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고(행 13:2-3), 시간이 얼마 지난 후 첫 번째 선교여행 중 바울과 바나바를 ‘사도’라고 부르는데(행 14:14), 이것은 두 사람이 안디옥 교회에서 안수함으로 사도적 소명을 받은 것이 아니라 창세전부터(엡 1:4), 하나님께서 사도의 직임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행 26:16-17).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사람들의 안수와 예언을 통해 사도적 사역에 부름 받은 것을 확증 받았던 것입니다. Kenneth E. Hagin는 이 사도적 부르심에 대해 『He Gave Gifts Unto Men』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내가 지금 부르는(I am calling) 일을 위하여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내가 불러 시킨(I have called)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셨는데(행 13:2), 그것은 ‘과거시제’이다”  환언하면 안디옥 교회에서 사람들을 통해 받은 안수는 단지 하나님께서 두 사람의 삶에 계획해 놓으신 사도로서의 부르심에 대한 단순한 확증이고 성경에서 말하는 사도는 오늘날처럼 교회의 공식적인 인증을 거치거나 사람들의 예언을 통하여 소명을 받고 사역의 직임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직임을 받은 사도는 우선적으로 말씀의 설교자이며(막 16:15), 가르치는 교사인데(행 2:42), 성경에 보면 바울은 자신을 처음부터 ‘사도’라고 말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세우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딤전 2:7, 딤후 1:11).  다시 말해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갈 2:7-9), 사도로서의 권위를 내세우기 보다는 먼저 복음을 전하고 가르칠 목적으로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행 9:15).  사실 사도의 주된 사역이 말씀을 전하거나 가르치는 자이지(행 4:33), 교회나 사람을 다스리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오늘날 사도적 직임과 관련하여 스스로 ‘사도’라고 말하거나(계 2:2), 아니면 Peter Wagner가 말한 것 같이 사도는 교회의 조정자이며 분쟁 해결자이고 심지어 ‘영적권위’라는 말까지 쉽게 사용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사도들은 교회를 조종하거나 지배한다고 나와 있지 않으며 사도 바울은 자신이 교회를 세우는 동안에 오직 교회에 대해 영적인 감독만 했고(행 16:4), 예루살렘교회나 다른 어떤 교회도 감독하지 않았으며 일단 자신이 개척한 교회를 떠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독권을 이양해 주기만 했습니다(행 20:28).  우리가 서신서를 통해 아는 것처럼 자신이 떠난 후에 교회가 질문을 해오면 그것에 대해 바른 조언들을 제공해 주었을 뿐 그들을 조종하거나 지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James. D. G. Dunn은 이 문제에 대해 『Unity and Diversity in the New Testament』에서 “바울은 그들 대적하는 사람들도 인하여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명령 투의 말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베푸는 대부분의 가르침은 명령이라기보다는 ‘권유’이며 그는 개심자들이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는 권위주의자가 하는 방식대로 자기 권위를 행사하지 않았고 그는 자기 권위의 효력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공동체에 달려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고전 5:3-5, 고후 2:6-8). 그가 사도적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자신이 위임받은 사역에서 야기된 문제에 국한되는데 예를 들어 주님의 말씀에 뒷받침을 받을 수 있는 경우에는 순종하도록 명령하였지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 경우에는 그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고 확신한 때조차 권위적인 태도를 삼가고 있다”(고전 7:25, 40).  물론 바울이 사도적 권위를 비중 있게 생각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갈 2장), 더 나아가 자신의 사도직을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은사로 여겨(롬 1:5, 갈 1:1), 갈라디아서와 골로새서에 나오는 것과 같이 잘못된 교리와 교회의 질서를 위해 자신의 권위를 행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루살렘에서 올라온 ‘거짓 사도’들처럼(고후 11:1-15), 스스로 권위를 내세우거나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스스로 ‘사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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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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