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극단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자기 자신의 준비에만 의지하여 더 이상은 바라지 않고,

어떤 이는 준비를 경멸하여

성령의 역사와 감동과 영감에만 의지하는 경향을 가집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으로는 결단코 되지 않습니다.

늘 둘을 겸해야 하고 “둘이 함께” 가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이나 기름 부으심”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을 아는데 가장 훌륭한 접근방식은 무엇보다도

성경에서 그것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기 전에

나는 모든 설교자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설교하기 전에

이 성령의 감동과 기름 부으심을 기다리며 간구합니까?

성령의 역사가 여러분의 최대의 관심사였습니까?

설교에서 이보다 더 철저하고 노골적인 시금석은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께서 설교자에게 특별한 방식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사람의 노력과 열심을 초월하여 성령에 의해 쓰임을 당해,

그를 통해 성령께서 일하시는 도구가 되는 위치에서

설교사역을 수행하도록 성령을 통해

설교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아주 뚜렷하고 명백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강에서 올라올 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그에게 임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후에 이것을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셨는데,

그의 고향에 나사렛의 회당에서

그것을 설명하여 말씀하셨다고 누가복음 1장18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 부으시고…’

 

내가 강조하는 싶은 것은 요단강에서 주님께서 있었던 일은

이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님 자신마저도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이 독특하고 특별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지 못하였다면

땅위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임무를 행사하지 못하셨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말이지 이것은 예수님에게도 그러합니다.

 

누가복음 마지막 장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제자들은 3년 동안 주님과 함께 있었으면서

그분의 설교와 교훈을 들어왔고 모든 기적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그분과 개별적인 대화와 교제를 나누는 유익을 누렸던 것입니다.

제자들 모두가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장사지냄을 목격했습니다.

그보다 더 한 것은 그의 육체적인 부활의 사실을 모두 다 목격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생각하기를 이 사람들이야말로

이제 전도하러 나갈 완벽한 상태에 있구나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의 교훈에 의하면

그들은 아직 그런 위치에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필요한 모든 지식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지식이란 충분하지 않아 더 필요한 무엇이 있었던 것인데,

그것은 성령의 권능과 기름부음과 나타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제자들에게마저 이것이 필요하였다면

이 일을 전하려고 하는 다른 모든 이들에게는 얼마나 더 질실하게 필요하겠습니까?

 

“예,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조금도 고민할 것이 못 됩니다.

이제 그 모든 것은 사도시대에 끝났으니 우리와 관계없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이 모든 것을 사도시대에만 국한시킨다면,

어떤 경우에는 그것들이 사도들에게만 해당되고,

어떤 경우에는 우리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요?

우리가 그것을 구별할 때 무슨 근거로 그렇게 한단 말입니까?

여러분의 판단의 척도가 무엇입니까?

나의 답변은

성경이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될 것을 의도하고 있으며

모든 성경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식을 가질 수도 있고,

준비할 때 면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하심이 없이는 아무런 능력도 가질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설교한 것은 아무런 효과도 가져오지 못할 것입니다.

설교자의 노력이 아닙니다.

설교자는 단지 도구요 통로이며 수단일 뿐입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와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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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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