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보면 사도에 대해 네 가지로 분류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물론 ‘사도’라는 단어를 놓고 어떤 서열로 분리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도에 서열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사도라고 해서 다 같은 사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먼저 사도의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로 성경은 예수님을 '사도'라고 부르고 있고(히 3:1), 여기서 ‘사도’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보냄을 받은 사람’(요 3:17), 또는 ‘위임을 받은 자’들을 의미하며 주님은 모든 보내심을 받은 자들의 머리 위에 계십니다(엡 1:22).  그리고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골 1:18), 공생애 사역에서 세상에 구원의 좋은 소식을(사 61:1), 가져오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자이며(막 1:38), 위임을 받은 자였습니다(눅 4:18-19).  또한 예수님은 고향에서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실 때 자신을 ‘선지자’라고 칭하시기도 하셨고(마 13:57, 눅 4:24, 요 4:44,, 행 7:37), ‘복음 전도자’의 직임에 가지고 계셨을 뿐 아니라(마 1:21),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부르셨으며(요 10:11, 히 13:20, 벧전 2:25), 동시에 교사이기도 하셨습니다(마 5:1-2, 9:35, 막 1:21-22).  따라서 예수님은 각 사역의 은사에서 홀로 한 서열 안에 계시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그토록 가장 높은 서열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골 1:15-18).

 

두 번째는 어린양의 사도들로서 계시록에 보면 어린 양의 열 두 사도들에 대해 언급하는데(계 21:14), 이 어린양의 사도는 오직 열두 명뿐이고(마 10:2-4), 예수님을 따랐던 이 열두 사도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그 두 번째 서열 안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어린양의 사도의 자격은 예수님의 사역 현장 속에서 늘 함께 다녔던 증인이어야만 하고(행 1:21),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할 사람이어야만 합니다(행 1:22).  이러한 자격을 가진 어린양의 열두 사도들은 나중에 신약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데 사용된 사람들이었습니다(엡 2:20).  어떤 사람들은 맛디아가 아니라(행 1:23), 바울이 어린양의 사도로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바울이 어린양의 사도로서 자격이 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예수님의 사역의 현장을 눈으로 목격한 증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적에 중생도 하지 않은 사람으로 그분의 부활을 직접 본 증인도 아니고 나중에 세월이 흘러 예수님이 다메섹 도상에서(행 9장), 그를 은혜로 불러주셨을 때 비로소 주님을 만났습니다(고전 15:8).  그러므로 어린양의 사도들은 맛디아를 뽑으므로 끝났지만(행 1:26), 또 다른 사도의 직임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신약 성경을 읽어보면 ‘보내심을 받은 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열두 사도들 외에 더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고전 15:5-9).

 

세 번째는 바울이 속해 있는 사도의 서열로 이들 역시 신약 성경의 교리적인 토대가 형성되는 것을 도왔기 때문에 두 번째 사도들처럼 토대적인 사도들과 선지자들로 간주되어야 합니다(엡 2:20).  왜냐하면 신약 성경의 복음이 이들에게 계시되었고(갈 1:16), 특히 사도 바울은 신약 성경의 많은 부분을 썼으며 그리스도에 관한 신비한 계시를 사람으로부터 배운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부터 직접 받았고(갈 1:12), 복음의 계시를 초기 신약 성도들에게 전파했기에(엡 3:3-5), 더 이상 오늘날 교회의 기초에 무엇인가를 더하기 위한 부가적인 계시를 받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새 언약의 계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갈 1:8).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무엇인가를 더하거나 뺄 수도 없을 뿐더러(계 22:18-19), 오늘날 교회의 기초를 놓을 수 있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동일한 수준의 권위와 똑같은 서열을 받은 사도와 선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이미 완성이 되었기 때문에 ‘과대망상증 환자’이거나 ‘사이비 교주’가 아닌 이상 오늘날 누구든지 두 번째와 세 번째 서열에 속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도행전 1장 21-22절에 보면 사도의 자격이 나오는데 이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바나바는 사도의 자격이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성경은 그를 '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행 14:14).  다시 말해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두 번째와 세 번째 서열의 사도는 없을지라도 네 번째 서열에 속한 사도들은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사도’라는 단어는 지금보다 초대교회 시대에 더 폭넓게 사용된 것만은 사실인데 문제는 오늘날 그 용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사도’라는 말을 사용하면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사도’라는(눅 6:13), 헬라어는 앞서 말했듯이 ‘보냄을 받은 자’란 의미의 ‘아포스돌로스’로부터 번역된 말이지만(막 3:13-15), 더 정확하게 말하면 ‘특별한 대표’나 ‘특별한 사자’라는 뜻으로 바울은 빌립보에 보내는 사자로서 에바브로디도에 관해 말하는데(빌 2:25), 여기서 ‘사자’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가 바로 ‘아포스돌로스’입니다.  비록 바울은 ‘사자’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에바브로디도를 사도로 부르고는 있지만 그는 우리가 오늘날 생각하는 구체적인 의미에서 사도의 직임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즉, 그에게 ‘사도’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 그것은 ‘대표자’로서 또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구제 헌금을 위해 디도를 보내는 것처럼(고후 8:23), ‘회중의 대표’로 위임받아 보냄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물론 그는 두 번째나 세 번째 서열의 사도는 아니었고 신약 성경의 기초를 놓지도 않았지만 바울이 여기서 ‘사도’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했는데 이것은 어떤 모임에 한 사람을 대표로 보내는 것처럼 교회가 에바브로디도를 보낸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단순히 사역에서 바울을 돕기 위해 빌립보 교인들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요 13:16), 또는 ‘대표자’(고후 8:23)라고 볼 수 있고 성경 어디에도 그가 바울처럼 교회의 기초를 놓았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사도적 직임의 완전한 활동범위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도 그리스도의 몸 안에 복음의 메시지를 가지고 보냄 받은 자들로서(롬 10:15), 어느 정도 사도적 직임에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며 이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어떤 영적인 방향에 따라 특정한 메시지나 사역을 가져오기 위해 성령으로부터 위임받은 자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목사/선교사가 한 도시에서 교회를 세우도록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다면 그는 네 번째 서열에서 어느 정도 사도적 직임 안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도시에 파송된 모든 목사가 다 사도로서 자격이 있다는 것은 아니고 만약 어떤 사람이 바나바와 사울처럼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다면(행 13:4), 그는 네 번째 서열에 있는 사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나라에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참으로 성령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보내심을 받은 자가 있다면 그들이 바로 사도입니다.  왜냐하면 사도 사역의 중요한 특징들 가운데 한 가지는 교회를 세우고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행 2:42).  예를 들어 사도행전에서 많은 이방인 교회들이 사도 바울에 의해 세워졌는데(행 13-20장), 오늘날 진정한 선교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특정한 나라 사람들에게 어떠한 사역, 즉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시작하고 세울 수 있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면 그는 성령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란 의미에서 네 번째 서열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Wayne Grudem은 오늘날도 효과적인 개척자들/선교사들이 있기 때문에 ‘사도’라는 단어를 넓은 의미에서 이해한다면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데 사실 용어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고전 2:4), 그리고 삶과 사역자의 열매입니다(마 7:20).  만약 이런 표징들이 없다면 그는 사도직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볼 수 있고(고후 12:12), 진정으로 성령의 보내심을 받은 자라면 스스로 사도라고 부르면서 돌아다니지 않는 겸손함이 있는데 오늘날 그런 점에서 많은 사람이 실수를 범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주님이 보내심을 받은 네 번째 서열의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도들이 어디엔가 있습니다.

'논쟁거리 > 사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의 특징과 표징  (0) 2015.03.28
사도의 부르심과 권위  (0) 2014.11.08
오늘날에도 사도들이 있는가?  (0) 2014.06.21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