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Newsweek의 커버스토리는 동성결혼의 성경적 근거를 다루면서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동성애가 가증스러운 죄라는 많은 성경구절들을 인용하지만 이들은 이웃사랑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무시하기 때문에 동성애자를 거부하고 증오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기사화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구약성경에 나오는 몇 개의 구절에서 남성 간의 성관계를 정죄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는 고대 유대사회의 규범에 다룬 특정 본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특히 레위기 20장13절에서 레즈비언의 행위에 대한 말씀이 없기 때문에 동성애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한다면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없고 21세기에 사는 현대인은 구약시대에 얽매여 살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놓고 동성애자들을 옹호하는 입장에 있는 W. Norman Pittenger 박사는 “기독교의 복음의 요지는 하나님이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주신다는 사실이다”라고 강조했는데 물론 하나님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것은 사실이지만(마 11:28), 주님의 사랑이란 삭개오처럼 회개하고 돌이킨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이지(눅 19:1-10), 죄인지를 알면서도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 것을 묵인한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Erwin W. Lutzer의 말을 인용한다면 사랑은 모든 악행을 정당화 해주는 면허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먼저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의 사건 속에서 오늘날 ‘동성간의 연애’(동성애)를 뜻하는 ‘소도미’(sodomy)라는 단어를 창세기 13장13절과 18장20절 그리고 19장25절과 연결시켜 생각한다면 이 성경 기사의 배경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겠지만 문제는 확실하게 소돔의 죄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왜 그토록 무서운 심판을 내리셨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전통적인 기독교 입장은 동성애는 성경적 규범에 반하는 것으로 소돔 사람들이 젊은이와 노인 할 것 없이 모두가 동성연애의 죄악에 깊이 빠져 있어 롯이 자신의 집을 방문한 두 천사에게까지 그 혐오스러운 행위를 하려다가 심판을 받았다고 해석합니다(창 19:1-5).  물론 이런 해석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상관하리라’(5절)는 말은 “성관계를 가진다”(창 4:1)는 말이 아니라 단순히 두 명의 방문객이 누구인지 “알기 원하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구약성경에 히브리어 ‘야다’는 943회가 나오지만 육체적인 관계, 즉 성적인 교접을 의미하는 말은 10회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구절은 “우리가 그들을 그냥 알기 원한다”는 뜻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면서 소돔의 심판은 동성애의 문제가 아니라 가난한 자에 대한 무관심(겔 16:49-50)과 교만과 위선(사 1:10), 그리고 간음과 거짓 때문이라고(렘 23:14), 말하면서 사회적인 무책임과 외지인에 대한 불친절 때문에 멸망당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해석들은 개연성은 있으나 이 일로 인해 소돔이 심판을 받았다는 것은 확실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사야 3장9절예레미야 23장14절 그리고 에스겔 16장46-59절을 자세히 읽어보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더러운 음행을 소돔 지역의 퇴폐적인 성도덕과 관련시키고 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사사기 19장22절에 나오는 기브아의 사건을 통해 그 어휘의 용례와 정황을 살펴볼 때에 당시 가나안 지방에서의 동성연애는 널리 퍼져있는 악습일 뿐 아니라 동성애는 하나님이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는 행위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레 18:12, 20:13), 소돔 사람들이 롯에게 요구하는 것이 분명 동성 강간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창 19:5).  더 확실하게 성경의 글자와 문맥 그대로 소돔이 가증스러운 죄악, 즉 동성애를 통해 심판받은 것을 명백하게 증거 하는 구절을 찾아본다면 아마 유다서 7절‘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동성애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신 적은 없지만 이혼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창세기 2장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한 몸 이룰 것을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와 계획은 동성간의 결혼이 아닌 이성간의 결혼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조금 더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레위기에서 동성애적 행위에 대한 위협적인 선언들, 즉 ‘너는 여자와 동침함과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것이니’(레 18:22), 그리고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레 20:13)라고 경고합니다.  물론 이 구절에 대해서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 특히 Peter E. Coleman 같은 사람은 ‘가증스럽다’라고 번역되어 있는 단어는 도덕보다는 종교적 금기인 ‘우상숭배’와 연관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또 다른 신학자는 레위기에 나오는 율법들은 오늘날 폐지된 구약의 ‘의식법’(히 8:13)에 속하는 부분이거나(갈 4:9-10), 이미 사라진지 오래된 관습이기 때문에(골 2:16-17), 현대의 동성애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두 구절에 대한 정확한 성경적 해석은 모든 종류의 동성애적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신 23:17, 딤전 1:10).  사실 오늘날 동성애에 대한 죄의 대가로 당장 돌에 맞아 죽지는 않겠지만 신약성경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나와 있고(고전 6:9), 특히 큰 논쟁을 일으키는 구절인 동성애에 관한 로마서 1장26-27절에 나오는 말씀인데 이 구절들을 구약성경 레위기에 나오는 구절들과 (레 18:22, 20:13), 직접 연결시키고 있는 것을 볼 때 레위기의 가르침은 신약교회에서도 규범적으로 받아들인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동성애에 대한 욕망 자체를 하나님께 맞서는 개인의 정욕에 의한 반란으로 보았는데(딤전 1:9-10), 그 이유는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질서를 반하는 역겹고 가증스러운 행동일 뿐 아니라(롬 1:24),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을(창 2:24), 철저히 대적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로마서 1장26-27절의 말씀은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논쟁에서 매우 중요한 본문이기 때문에 동성애 옹호자들에게는 큰 걸림돌이 되겠지만 사도 바울은 결코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닌 “부자연스러운 행동” 즉, ‘순리대로 쓸 것을 역리대로 쓰기’ 때문에 상당한 형벌을 받았다고 강조합니다.  물론 이 구절을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 중 하나인 John Boswell 박사 역시 바울이 정죄하고 있는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이 아니라 이성애자들이 범하는 변태적인 동성애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현대어/현대인 성경에서 번역했듯이 “하나님이 정해주신 자연스러운 법(정상적인 성생활)을 어기고 변태적인 짓(성적범죄)을 저지른” 인간의 부끄러운 행위 자체를 바울이 비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신구약 성경은 모든 종류의 동성애적 행위는 하나님의 정하신 성적 질서를 파괴하는 죄로, 인간 스스로가 무절제한 성적인 욕망에 이끌려 살아갈 때 하나님이 내버려둠으로써 생긴(롬 1:24, 26, 28), 무서운 심판의 결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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