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다 커서 결혼할 나이가 된 두 자녀들을 위해서는 이들이 Middle School 다닐 때부터 배우자를 놓고 기도를 시작했지만 나의 배우자를 위해서는 늦은 감이 있지만 예수님을 영접하고 20대 중반부터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결혼기도를 하는 가운데 가족과 지인을 통해 여러 번 선을 보거나 소개를 받아 만난 적이 있지만 그 상대방을 놓고 기도할 때마다 평생 동고동락할 확신을 하나님이 주신 적이 없었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끝날 때가 많았습니다.  당시 미국에 살면서 한국 오산리 금식기도원에서 열리는 국제 청장년 금식기도회(지금은 전국 청장년 금식 대성회)를 해마다 참석하게 되었는데 마지막 보호식 하는 날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아름다운 마음과 선한 눈을 가진 지금의 아내를 만나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후 세 번 정도 만나 식사를 하고 주중 수요예배를 같이 드린 것이 전부였지만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 전화와 편지를 통해 교제를 나누면서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하는 가운데 만난 지 사 개월 만에 양가 가족들이 모여 목사님의 주례를 통해 약혼식과 더불어 결혼식까지 순조롭게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20대 중반부터 시작한 결혼 기도가 30대 초반이 돼서야 응답되었지만 만약 결혼 기도를 하지 않고 육신의 정욕에 끌려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짝이 아닌 다른 짝을 만났다면 지금처럼 건강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결혼을 모든 인간 사회의 근본 요소로 만드셨고(창 2:18), 이 결혼이라는 제도는 교회, 학교, 직장이 있기 전에 만든 제도이기에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결혼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막 12:25), 성경에 결혼에 대한 분명한 뜻을 제시해 주셨습니다(마 19:4-6).  만일 하나님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세우신 뒤에 더 이상 결혼에 대해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계속해서 이런저런 규칙들을 마음대로 만들어 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결혼에 대한 성경적인 원칙을 지켜야 하며(창 2:20-24), 개인이나 국가조차도 어느 누가 결혼할 수 있고 어떤 근거 위에서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국가는 결혼에 대한 개인기록을 서류로 보관할 수는 있지만 결혼을 위한 어떤 규칙을 정할 권리나 권한은 없고 그 특권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는 것입니다(막 10:9).  사실 결혼은 가톨릭에서 생각하는 것이나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류를 번식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며 본질적으로 생물학적인 출산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제도도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이 출산을 결혼 안에서 그분의 의무로 수행해야 한다고 명령하시기는 했지만(창 1:28), 출산이 결혼의 근본적인 목적이 아니며 하나님이 제정하신 결혼은 단순히 남녀 간의 관계 이상이기에 결혼을 동물 짝지기로 혼동하지 말아야 하고 인류의 번성은 결혼의 하부 목적이지 주된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창 1:26), 이렇게 창조된 인간에게 하나님은 서로 다른 특징을 주셨는데 남자는 보통 공격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에 의존하고, 여자는 직관과 기본적 신뢰 그리고 감수성이 풍부합니다.  물론 이것은 일반적인 모습이고 서로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요점은 둘 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다른 방식으로 그분의 상의한 측면을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의 결혼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 나오는데(창 1:24-25),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한 몸’이라는 단어로 이 말의 의미는 결혼은 지구상의 그 어떤 것과도 다른 결합, 즉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나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하나 됨을 나타내는 것으로(막 10:8), 이 결혼을 통해 두 가지 끈으로 결합되는데 하나는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하겠노라고 ‘언약’ 하는 것이고(창 2:24, 롬 7:2), 다른 하나는 영적결속을 이루는 ‘부부간의 성관계’입니다(히 13:4).  다시 말해 언약의 결속이 이루어지고 나서 두 사람의 몸과 혼과 영을 연합시키는 성적결속이 이루어져 그로써 둘이 하나의 육체가 된다는 것입니다(엡 5:31).  이 하나 됨에 대해 구약성서 신학자 Walter Brueggemann“인간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을 이룬다”라고 주장했는데 쉽게 말하면 결혼의 원래 목적은 부부간의 하나 됨을 통해서 하나님을 거울처럼 보여주는데 있고 이 하나 됨을 이해할 때만 결혼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Tim Alan Gradner 역시 『Sacred Sex』에서 “세상에 죄가 들어오기 전, 하나님은 최초의 커플(아담과 하와)이 서로 나누고 즐기며 그들의 하나 됨을 축하하도록 특별하고 비범한 선물인 성행위를 주셨다. 또한 성행위는 거룩하다. 성행위를 안 남성과 여성의 온전한 연합에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나기 시작한다”라고 주장한 것처럼 이 말을 통해 결혼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바울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는데, 그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설명할 때면 언제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을 볼 때(엡 5:22-33), 결혼의 목적이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세상에 온전하게 드러내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여기서 바울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고(엡 5:23), 그런 복종이 학대를 자초한다고 믿는 여자들을 위해 이 원리를 오용하는 남편에게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명령하시면서(엡 5:25-26), 창세기의 말씀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엡 5:31)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합니다.  환언하면 결혼은 두 가지 결속을 만들어 주는데 하나는 남자와 여자는 서로 간의 헌신과 보살핌이 있고, 다른 하나는 조건 없는 사랑의 언약이 가져다 준 보호 아래서 성적 친밀감을 누림으로 둘이 하나의 육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 유대인들은 부부간의 사랑을 나누는 것을 거룩한 행위라고 생각했고 지성소에 들어간다는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결혼은 중요한 것이기에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평생을 사랑하고 서로 위로할 수 있는 믿음의 동반자를 만나야 하는데(창 24:67), 만약 그리스도인이 불신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 삶에 있어 영적인 싸움은 매우 치열하게 일어날 것이고(엡 6:12), 부부간의 극복하기 힘든 위기가 끊임없이 밀려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같이 살고는 있지만 신자 안에 거하는 영(고전 6:19)과 불신자 안에 거하는 영(엡 2:2)이 서로 달라서 마음과 생각이 하나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마 10:36).  물론 믿는 부부들도 살아가는데 있어 갈등과 어려운 위기가 닥치는 것은 사실이지만(롬 8:35), 이것은 얼마든지 두 사람이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고(요일 5:4), 말씀과 성령이 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롬 8:37).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반드시 주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고(창 24:3-4, 고전 7:39), 무엇보다도 기도 중에(창 24:63), 인내하며 기다리는 가운데(창 29:30),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배우자를 만나야 되고(창 24:42-44), 상대방의 동의(창 24:8)와 부모의 뜻을 존중하면서(창 28:1-2), 모든 것이 아름답고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롯 3:18).  그 이유는 결혼이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제정하신 제도이고(창 2:18-25), 또한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이며(사 43:7, 고전 10:31),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고(눅 11:28), 예수님도 하나님이 만드신 결혼제도에 대해 지지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마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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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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