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하시 사역

예언사역자 2017. 1. 28. 12:12

석가모니는 사람이 스스로 욕심을 없앨 수 있게 한다는 ‘팔정도’(Eightfold Path)라는 제도를 만들어 냈는데, 이 팔정도를 따르는 사람만이 열반에 이르게 되고 죽음과 환생의 부단한 순환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허설(虛說)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인간이 욕심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인데, 사실 부패한 인간의 마음은 끝없는 지옥의 무저갱과 같아서 아무리 모든 것을 소유한다고 해도 욕심을 채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듯 모든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지만 지나온 과거 역사에서 말해주고 있듯이 돈이 많아 삶의 행복을 느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오히려 비참한 삶으로 인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요 근래 어느 한 사람의 개인적인 욕심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혼란스러운 것을 보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은 “인간이 돈에 중독되거나 맛을 들리면 나라 전체도 말아먹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이런 사람이 불신자라면 이해가 되지만 실망스러운 것은 집사 직분을 받아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로 지옥에 갈 수는 있겠지만(눅 6:46-49), 가장 큰 원인을 찾아본다면 아마 가룟유다(마 26:15)나 바리새인(눅 16:14)처럼 돈에 환장하거나 중독되어 있기 때문에 믿음에서 떠난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딤전 6:10).  이렇게 돈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한결 같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마음으로는 전혀 그분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막 7:6).


구약성경에 보면 메소포타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이며(신 23:4), 술사인 발람은(수 13:22), 히브리인이 아닌 선지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음행을 부추겼던 사람인데(민 25:1-3), 돈을 지나치게 밝히고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모압 왕 발락에게 자신의 예언을 팔아먹은 대표적인 파렴치한 선지자였습니다(벧후 2:15-16).  사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어 광야 사십년 간은 엄청난 훈련을 받는 기간이었지만(민 14:33),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일곱 족속보다(신 7:1), 더 무서운 적이 있었다면 그가 바로 술사 발람이었는데(수 13:22), 돈에 미친 이 사람이 얼마나 심한 해를 이스라엘 백성들에 끼쳤는가 하면 그가 가지고 있는 무서운 계책으로 인해(민 31:16), 싯딤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고 모압 여자들의 미인계에 속아 간음하다가 거의 멸망당할 뻔 했습니다(민 25:1).  결국 염병이 퍼져 하루아침에 이만 사천 명이 죽었고(민 25:9),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음행을 저지르기 위해 천막 안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남자와 미디안 여자를 창으로 찔러죽일 때 비로소 하나님의 진노가 그쳤습니다(민 25:7-9).  사실 발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귀한 영감을 받는 이방 선지자이지만 돈에 대한 욕심을 이기지 못해 이스라엘 백성을 파멸로 이끈 장본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유 11절).  우리가 이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사역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일을 이용하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언사역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금전적인 것이 개입되는 것인데, 가령 그것이 예언(고전 12:10), 치유(고전 12:9), 기름부음(고후 1:21)이든 간에 거기에는 항상 돈(회비)을 요구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산상수훈 ‘강해설교’를 하실 때(마 5-7장), 아니면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쳐주기 위해 ‘치유집회’를 열었을 때(행 3:1-10), 더 나아가 바울이 에베소 제자들에게 안수하여 그들이 방언을 받고 예언을 하는 ‘은사전이 집회’를 했지만(행 19:6), 이들이 돈을 받고 성령집회나 세미나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 ‘말씀 세미나’, 그리고 ‘제자훈련 세미나’나 ‘성령 컨퍼런스’와 같은 집회를 열 때 당연한 것처럼 회비를 받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과연 성경적인지 의구심을 가지기도 합니다(고전 9:18, 고후 11:7).  무엇보다도 사역자들은 발람같이 돈에 미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사역을 교묘하게 이용하지 말아야 하고(벧후 2:15-16), 미가 선지자가 외치는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미 3:5).  이 말의 의미는 당시의 거짓 선지자들이 백성들의 도덕적, 정신적 향상보다는 한조각의 떡(물질)을 위해 백성들을 속여 번영과 구원을 예언하였고(렘 6:13), 자신들의 잇속만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헛된 것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렘 5:31).


사실 돈 때문에 타락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예언사역자들만이 아니기에 미가는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친다.’라고 불평했는데(미 3:11), 이 말은 백성을 공평하게 다스려야 할 재판관이 뇌물을 받아 판결을 하고(사 1:23, 미 7:3), 하나님의 법도를 가르치는 제사장은 돈을 위하여 설교를 하고(렘 5:31, 6:13), 백성들이 죄악을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해야할 선지자들 역시 돈의 맛을 알아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점쟁이가 점을 치듯이 거짓으로 예언했다는 것입니다(겔 22:25).  이것은 비단 구약시대의 사역자들만이 아니라 신약시대 교회사역자들 역시 이러한 유혹을 받았는데, 예를 들면 교회 안에 돈 많은 부자들에게 편애를 행한 것인데(약 2:1-4), 이것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 때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던 Paul Cain은 이러한 것을 열왕기하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여 ‘게하시 사역’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왕하20-27), 솔직히 이런 죄에 빠질 가능성이 가장 많은 사역자가 있다면 바로 치유나 예언을 행하는 사람들이고, 물론 목사나 신학자도 포함되어 있지만(약 3:1),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특히 예언과 치유사역자들이 그렇게 많은 사역을 행하고서도 지옥에 떨어진 이유가 무엇인지(마 7:22),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마 24:24).  그렇기 때문에 가르치는 자는 Lloyd Jones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기억하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사역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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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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