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믿는 것과 성령을 만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누구나 하나님을 믿을 수는 있지만 누구나 그분을 만나는 것은 아닌 거와 같습니다(요 5:37-38).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심하게 논쟁하는 부분은 성령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성령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환영하고 받아들이고 높여야 할 인격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논쟁하는 이유는 아마도 성령을 통해 나타나는 현상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어떠한 현상이 나타날 때 항상 두 부류로 갈라집니다. 한 부류는 성령의 역사로 인정하지만 다른 한 부류는 성령의 역사를 악령의 역사라고 쉽게 판단해서 말합니다. 그러면 만약 오순절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 같습니까? 교회가 공동묘지처럼 쥐 죽은 듯이 잠잠할까요? 아니면 그 반대일까요? 아마도 인간의 이성과 상상을 초월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할 텐데 이때에는 분명히 교회에 논쟁이 생기고 충격을 받고 갈등이 일어날 것입니다(행 2:6-8, 12).
물론 사탄도 성령의 역사를 완벽하게 모방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존재이며(고후 11:14),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엡 6:12, 계 12:9). 그리고 엄청난 능력과 표적과 기적을 행합니다(살후 2:9-10). 마치 애굽 바로의 왕의 술객들처럼 말입니다(출 7-8장).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시몬이나 16장에 나오는 점치는 여자처럼 사람들을 심히 놀라게 할 수 있습니다. 라파엘 개슨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강신술을 심취했던 사람으로 자신의 저서『매력적인 모조품』(The Challenging Counterfeit)에서 “사단은 극히 교묘한 방법으로 귀한 성령의 은사를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 거짓으로 모방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기적, 치유, 방언, 방언통역, 영분별, 예언의 은사까지 사탄에 의해 교묘하게 모방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심할 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가지고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현상 뒤에 나타나는 열매입니다(눅 6:44). 예를 들어 알콜 중독자이며 아내를 때리고 자녀들에게 온갖 더러운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이 어떤 계기를 통해 집회 기간 동안 말씀을 듣다가 아니면 기도를 받다가 쓰러져 몸을 떠는 체험을 했는데 집회가 끝나고 난후에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고 아내를 때리지도 않고 오히려 주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자기 아내를 사랑한다면 무엇인가 달라졌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쓰러지는 것이나 몸을 떠는 현상만을 보고 쉽게 귀신의 역사라고 판단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인지 악령의 역사인지 알 수 있는 것은 현상이 아니라 그 뒤에 나타나는 열매입니다(마 7:16). 그리고 기억할 것은 악령은 다른 것들은 다 흉내는 낼 수 있어도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는 모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갈 5:22-23).
◈ 로이드 존스는 “부흥이 있을 때 항상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거룩한 무질서가 존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령의 깨달음 속에 신음하고 아파하고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면서 성령의 강력한 능력아래 신음하거나 쓰러지거나 몸의 경련을 일으키며 땅에 고꾸라지는 현상들에 대해 “이러한 현상들이 부흥에 꼭 필요한 요소는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부흥이 있는 곳마다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라고 말합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30년간 섬겨왔던 20세기 서구 교회에서 가장 영향력을 끼쳤던 정통복음주의자 중의 한 사람으로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자신의 저서『신앙 감정론』(Works)에서 한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걸림돌이 되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한 가지 더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날 때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사탄의 역사인지, 인간적인 것인지 반드시 분별하는 것은 말할 것이 없겠지요. 조나단 에드워즈는 당시 영적 대각성을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보고 판단하지 말고 사람들의 열매를 보고 판단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책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에서 다섯 가지를 제시합니다. 만약, 이 질문에 대해서 “그렇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일어나는 현상들이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설사 그 현상이 우리들 눈에 거슬리고 낯선 것일지라도 말입니다. “먼저,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결과를 낳는가? 두 번째, 죄를 미워하고 의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가? 세 번째, 성경말씀을 더 사모하는 결과를 낳는가? 네 번째,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는 결과를 낳는가?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더 커지는 결과를 낳는가?”(마 7:15-20).
이렇듯 사람들에게 성령이 부어지면 어떠한 일들이 일어납니까? 눈에 가려졌던 영적인 세계가 열립니다(엡 1:17-18). 그래서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게 됩니다(행 2:17). 구약성경에는 소수의 예언자들이 있었고 예언자 외에 다른 사람들은 거의 예언을 하지 않았지만 오순절 성령 강림이후 성령은 모든 것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예언과 환상과 꿈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며 믿는 자들게만 주어진 엄청난 은혜이며 특권입니다(고전 12:7). 그러나 이렇게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꾼다고 해서 다른 지체들보다 탁월하다고 생각하여 높은데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은사와 사역들은 역할과 강도가 다를 뿐이지 모든 것은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인간이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롬 12:6, 고전 1:29).
◈ 한편 여기서 ‘예언’이란 하나님이 주시는 격려의 말로서 개인이나 아니면 교회 공동체에 전달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내용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격려하고 위로하고 세워주기 위해 전해주는 말이 예언이라는 것입니다(고전 14:3). 그러나 사람들이 예언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은 오늘날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을 듣거나 계시를 받으면 성경이 계속 쓰여 지는 것이 아니냐며 이것을 “직통계시”라고 해서 이단으로 취급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무엇인가 오해를 해도 대단히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성경의 계시와 전혀 다르고 그 범주가 다릅니다. 오늘날 주어지는 이 예언의 말씀은 “현재의 말씀으로 특수한 상황에 대한 특별한 방향 계시 입니다” 다시 말해서 만나처럼 오늘에만 적용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언은 신뢰적인 측면에서도 성경과 다릅니다. 왜냐하면 예언은 실수할 수 있는 인간의 그릇을 통해서 주어지기 때문에 사람의 성품에 따라 오염될 수도 있습니다(고전 13:9). 예를 들면 마음에 깊은 상처나 쓴 뿌리를 치유 받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을 듣고 예언사역을 할 때 치유 받지 못한 마음의 상처가 예언과 함께 같이 묻어서 나옵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위로하고 덕을 세워주기보다는 상처를 주거나 좌절감에 빠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예언은 전혀 문제가 없는데 사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약 1:17). 그래서 성경은 반드시 예언을 분변하라고 말하며(고전 14:29), 그 주어진 예언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가를 확인해야 하고(요일 4:1), 좋은 것은 취하되 멸시치는 말아야 합니다(살전 5:20-21).
그러나 성경은 이와 달리 하나님의 영감의 말씀입니다(딤후 3:16-17). 영감이란 하나님의 진리가 사람을 통해 주어지지만 초자연적인 보호를 입어 혼탁함이나 오류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딤후 3:16). 성경의 원본에 적힌 글은 하나님의 의도한 뜻을 정확히 적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은 시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신뢰성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성경은 영원한 진리로서 모든 상황에 다 적용한다는 것입니다(계 22:18-19). 다시 말해서 1세기에 성경 기록은 마감되었지만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을 통해서 계속 말씀하고 계십니다. 만약 예언이 필요하지 않다면 사도 바울은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하려고 하라”(고전 14:1).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있어서 예언사역이 성령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구약성경에서 꿈과 환상은 주로 선지자들에게만 주어졌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의 정상적인 방법이었습니다(민 12:6).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신약에 와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일상적인 것이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행 2:17). 하지만 오늘날 목회자들 중에 꿈과 환상을 비웃으며 사람들에게 그런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성경이 완성이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꿈이나 환상 같은 것을 추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성경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면 하나님은 결코 그 사람에게 꿈이나 환상을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그의 마음에 성경본문을 상기시켜 주시는 데 그쳤을 것입니다. 성경이 수중에 있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열등한 수단을 사용하실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두 가지를 예를 든다면 먼저, 성경에 기록된 가장 유명한 꿈들 중에 하나는 마리아가 다른 남자의 아기를 가졌다고 생각한 요셉이 마리아와 이혼하기로 결심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꿈입니다(마 1:18-22). 하나님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 대한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서 꿈을 사용하실 필요가 없이 그저 요셉의 마음에 이사야 7장14절만 상기시켜주시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고 꿈을 통해 그분의 뜻을 확인시켜주셨습니다. 또 하나 예수님이 탄생하신 후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헤롯의 살인적인 진노로부터 어떻게 보호하셨습니까? 하나님은 다시 요셉에게 현몽하여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마 2:13). 이때 하나님은 그 일을 요셉에게 전달하기 위한 완벽한 성경본문인 호세아 11장1절 말씀을 가지고 계셨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고 꿈으로 그의 갈 길을 정확히 지시해 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가 욥바 성에서 기도할 때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게 됩니다(행 11:1-10). 이 환상은 앞으로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고 돌아올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구약성경을 사용하시지 않고 환상을 통해서 말씀을 하시느냐는 것입니다. 그냥 아모스에 기록된 성경말씀 9장11-12절을 상기시켜 주기만 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요약하자면 꿈과 환상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며 그분이 즐겨 사용하시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욥 33:13-18). 이렇듯 하나님은 말씀을 하시지만 사람들이 그분의 음성에 주파수를 맞추지 않기 때문에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한 것입니다(요 10:27). 그러므로 우리는 신구약 성경이 완성이 되었다고 해서 예언과 환상과 꿈을 불필요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 그렇다면 사람들이 성령의 초자역적인 역사를 믿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탄에게 속아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진리를 믿지 못하도록 마음에 의심을 주는 교활하고 사악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요 8:44). 다른 하나는 한 번도 기적을 체험한 적이 없는 것입니다. 예들 들어 방언을 하는 사람이 방언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다른 예로 자기 자신이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다가 주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았으면 그것을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행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약 성경에서 기적을 빼놓으면 성경은 그냥 평범한 책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초자연적인 기적들을 기록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요 20:31-31). 오직 그분에게만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말입니다(행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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