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의’와 로마서에서 말하는 ‘의’의 개념은 다릅니다. 로마서에서 말하는 ‘의’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법정적인 개념”을 말합니다(롬 3:19-28). 그것은 인간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그분의 주권 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엡 2:8-9). 예를 들어 천국에 소망을 가지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 예수님을 믿고 싶어 믿은 사람들이 있습니까?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은 하나님 떠난 무서운 죄인들이기에(롬 5:12), 에스겔서에 나오는 마른 뼈들처럼 영이 죽어 있어(겔 37:2), 하나님이 불러주실 때까지(요 6:44, 65), 그리고 하나님 아들의 음성,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까지(요 5:24-25), 도저히 혼자서는 살아날 가망성이 전혀 없는 죽어 있는 시체들입니다(엡 5:14).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영이 죽어있던 우리를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은혜로 불러주신 것입니다(딤후 1:9).
그러나 마태복음의 ‘의’는 조금 다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고 순종하는 의미에서의 ‘의’이며 대단히 “윤리적이고 실천적인 개념”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마태복음의 ‘의’를 보고 율법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하는데 바로 그것입니다. 복음은 율법을 더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마 5:17). 그동안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이 말한 로마서의 ‘의’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실제로 주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실천적이고 윤리적인 ‘의’의 개념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요 14:21), 그를 “율법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며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하며 그 사랑을 수도 없이 팔아먹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복음을 반쪽짜리로 만드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로 만든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을 “십자가의 원수”라고 말합니다(빌 3:18).
◈ 예수님은 자기백성을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자가 주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딤후 2:19).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스스로 속이는 자가 되고(약 1:22), 천국백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마 7:21). 마태복음에 나오는 산상설교는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산상설교의 핵심은 ‘저희들을 본받지 말라’는 말씀에 있습니다(마 6:8). 이 말씀은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의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레 18:3)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천국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따라 살지 말고 천국 백성답게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벧전 2:9).
이렇게 산상설교에 비추어 볼 때,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이란 개념은 소유한 양을 가지고 평가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많이 가지고 있고 많은 인기와 명예를 누린 자들을 일컬어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많이 가진 자들은 언제나 행복해야 하고 기쁨과 삶의 만족함이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많이 가진 사람들이나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사람들 중에 행복은 커녕, 자살하거나 삶의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가지고 있는 물질과 명예가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거나 기쁨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전 2:1-11).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의 개념은 “사용”의 개념입니다. 단지 어떤 것을 많이 붙들고 있느냐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면 가장 바르고 아름답게 사용할 수 있느냐 하는 복의 개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복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이 진정한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시 1:1-6). 조금 더 쉽게 말한다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약 2:26), 예수님이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는 사람(막 3:35), 즉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요일 2:4-5). 그러니까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지 말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이 땅에 살면서 실천해 나가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요 15:14). 예수님은 산상설교를 시작하시면서 먼저 ‘팔복으로 나타나는 특성’을 통하여 진정으로 복을 받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며,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은 어떤 자들인지 분명히 밝히면서 단정적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 먼저 돈을 우상으로 받들고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이 없는 말이 본문에 나오는 말씀입니다(마 5:3). 세상 사람들은 가난한 자나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자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선 많이 가진 자와 많이 배운 자들을 선호하고 좋아합니다. 그래서 있는 자는 알아주고 없는 자들은 멸시받기 쉬운 곳이 타락한 세상입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가 사는 사회를 통해 밝혀진 분명한 사실들입니다. 그러면 믿는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어떠합니까? 그래도 교회니까 세상과는 무엇인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교회도 역시 잘사는 사람들을 알아주고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이나 많이 가진 사람들을 편애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일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말입니다(약 2:1-4). 아무튼 세상 사람들은 가난한 것을 싫어하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본문에 보면 “심령이 가난하다”라는 말이 나옵니다(마 5:3). 이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재물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궁핍하거나 혹은 마음이 약해 항상 남에게 양보하고 늘 용기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상태와 태도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낮아지는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어보니 자기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영적 가난함을 말합니다. 마치 어부 베드로가 물고기 하나 잘 잡는 것 가지고 교만 떨고 까불다가 예수님 앞에 서보니 자기 자신이 전혀 보잘 것이 없는 초라한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처럼 말입니다(눅 5:8). 쉽게 말하면 자기 자신을 주님 앞에서 죄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죄인 중에 가장 큰 죄인’으로 말입니다(딤전 1:16).
이렇게 자신의 초라함과 무가치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바울의 고백을 통해 그것을 알 수가 있는데, 그들은 한 결 같이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하며(빌 3:5-8), 자기 자신을 믿거나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얼마나 믿지 못할 존재이며 죄성을 가진 악질 인간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어떠합니까?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고 아니, 수백 번은 변할 것입니다. 날씨와 감정, 그리고 환경과 음식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은 요물 중에 요물입니다(렘 17:9). 이것을 인정하시나요? 이것을 인정하는 자는 자신이 별 볼일 없는 인간이며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고백이 나오는데 바로 이러한 사람을 두고 성경은 ‘심령이 가난하다’라고 말합니다(눅 18:13).
◈ 성경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롬 10:9-13). 여기서 ‘믿는다’라는 말속에는 자신이 주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신앙고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냥 입술로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마 7:21, 눅 6:46). 그리고 천국에 올라온 사람들 중에 심령이 가난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고 모든 사람이 다 자신들의 부족함을 느끼고 주님만을 의존했던 사람들로서 그들은 언제나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았습니다(계 14:4). 성경에 보면 창기와 세리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그 당시에 이스라엘 천민계층의 사람들로서 완전히 소외된 죄인들이며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들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바리새인들보다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들이 주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할 뿐 아니라 믿고 회개를 했기 때문입니다(마 21:31-32).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것은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초라함이나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부부사이에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데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부모와 자녀사이에서도 다릅니다. 자녀는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가난함을 아는데, 부모는 그런 아들이나 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이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롬 8:30). 똑같은 조건에 있는 두 사람인데 한 사람은 말씀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은혜를 받는데 다른 한 사람은 전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죄 문제로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눅 18:9-14).
◈ 천국의 유업을 누가 소유할 수 있습니까? 천국의 복은 자신이 주님 앞에서 얼마나 비참한 존재이며 죄 많은 인생인지를 깨닫고 아는 자가 소유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진리의 말씀으로 자신을 비추어 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그토록 심판받을 무서운 죄인이며 악질인지를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성령의 은혜가 임하면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그 실체가 드러나고 깨닫게 됩니다(엡 1:17-18).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첫 번째 조건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영혼의 상태가 영적으로 파산된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며, 그분의 손에 걸려들어 자기 안에 있는 해결되지 않는 영적인 궁핍함과 죄성을 보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천국의 유업인 것입니다(마 5:3). 성경은 심령이 쫄딱 망한 사람에게 소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망해가고 있는 중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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