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에 해당되는 글 22건

  1. 2018.06.30 항상 깨어 있으라
  2. 2018.06.29 그렇다면 이러한 실례들은 그리스도께서 신성과 인성을 한 인격 안에 지니셨다는 진리를 완전히 보여주는가?
  3. 2018.06.28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에 대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비성경적인가?
  4. 2018.06.27 적합한 사람입니다
  5. 2018.06.26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하나님이며 완전한 인간이란 정통교리는 언제 확정되었는가?
  6. 2018.06.23 끝까지 믿는 자
  7. 2018.06.22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 안에서 연합된 상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예를 들면 무엇이 있는가?
  8. 2018.06.21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재림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9. 2018.06.20 솔로몬의 지식과 지혜
  10. 2018.06.19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인간이며 완전한 하나님이시란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증거하는가?
  11. 2018.06.16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살펴라
  12. 2018.06.15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을 믿고 증거했는가?
  13. 2018.06.14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은 나이와 어떤 관계가 있었는가?
  14. 2018.06.13 교리의 사람
  15. 2018.06.12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경우에는 사람으로서 또한 어떤 경우에는 신으로서 사역하셨는가?
  16. 2018.06.08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는가?
  17. 2018.06.07 가장 적절한 방법
  18. 2018.06.06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취하셨다면 본래 하나님으로서 지니셨던 신성은 없어진 것이 아닌가?
  19. 2018.06.05 환경을 통해서
  20. 2018.06.04 로고스가 인성을 취하여 단 하나의 인격체가 되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21. 2018.06.02 해방되기를 끊임없이 갈망하라
  22. 2018.06.01 헌신

당신은 죄가 어떨 때 힘을 발휘하고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세력을 펼치는지를 고찰하고 항상 죄에 대항해 깨어 있어야 한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13:37)고 당부하신 말씀처럼 깨어 있는 것은 실로 우리의 의무이다.  누가복음 2134절은 깨어 있는 사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한 마디로 타락한 성품의 분출을 막기 위해서 깨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윗은 이 의무를 스스로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또한 그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지켰나니’(18:23).  그는 자신의 부정한 모든 행동 양식과 죄들을 대적하기 위해 깨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행위를 돌아보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이다.

당신은 죄가 활개를 칠 때는 어떤 상황이며 그것이 어떤 요소와 어떤 기호를 만날 때 그리고 어떤 조건이 충족될 때 유리하게 전개되는지를 생각하라.  그래서 그런 것들을 주시하고 대항하라.  육체의 질병을 당할 때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해로운 음식이나 공기 그리고 계절들을 피한다.  영혼의 질병은 육체의 병보다 더 중요하지 않는가?  죄의 상황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오히려 즐기는 사람은결국 죄를 짓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죄의 유혹의 모험에 빠져드는 사람은 결국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하사엘은 처음 선지자 엘리야의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이 그렇게 잔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선지자는 그를 확신시키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호와께서 네가 아람 왕이 될 것을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왕하 8:13).  결국 잔악한 행위의 유혹을 가지고 있었던 하사엘은 이스라엘에게 잔악을 행했다.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특정한 죄를 지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그 말을 듣고 처음에 놀란 것이다.  그 때 당신이 그의 속에서 대범하게 가지고 있는 유혹들을 지적해 주면 그는 곧 누그러져서 당신의 말에 수긍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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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비유는 비유일 뿐 바로 그 사실과는 차이점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신체와 영혼의 연합 비유도 그리스도께서 신성과 인성을 지녔으나 한 인격체란 사실과 다른 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그리스도의 인성은 로고스의 인격 안에서 신성과 연합함으로써 인성이 신적인 능력을 나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신체는 영혼으로 인하여 이러한 능력을 나타내지는 못합니다.  이와 같이 어떤 비유나 유추도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 및 한 인격이란 진리에 관해 부분적인 사실을 나타낼 뿐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며 어떤 면에서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유추로 그리스도의 양성의 연합 및 일인격에 대한 신비를 다 알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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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인자가 오시는 날과 때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했습니다(24:36).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를 묻는 제자들에게 주께서는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는 알 바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1:7).  이 두 경우에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재림의 때와 기한을 알게 할 생각이 없었고, 하나님 외에 누구도 그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종말과 그리스도 재림의 때를 예언한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예측은 모두 빗나갔고 그 때마다 많은 성도들이 미혹에 빠져 영적 피해를 입고 사회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재림의 시기를 정하여 말하는 것은 명백히 성경의 진리와 어긋나는 바 성도들은 이에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24: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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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수하다고 평가하는 기준과

사람의 평가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에 놀라지 마십시오.

세례 요한이 사람들 앞에서 사역한 기간은 얼마 동안이었습니까?

아마도 6개월 정도였겠지요.

세례 요한의 삶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어떠했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중에 요한보다 큰이가 없도다’( 7:28).

6개월을 온전히 하나님께 받친 요한의 삶에

하나님의 아들이 승인도장을 쾅! 찍어 주셨습니다.

 

당신의 삶을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많은 교회와 목사님들과 지도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한 개인이나 교회가 세상적으로는 괜찮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절대로 용납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하찮아 보일 수 있습니다.

시골 한 구석 작은 마을에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목사님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그곳으로 보내셨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은 책임의 경중을 막론하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6-31절에서

하나님은 세상에서 약하고 멸시받는 것을 일부러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믿게 됩니다.

당신이 약하다고,

제한된 존재라고,

평범하다고 느낀다면

당신이야말로 하나님이 쓰시기에 적합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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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년 칼케돈 공회에서 확정되었습니다.  이 회의에는 500명 이상의 교회 감독들이 참석하여 그 이전에 있었던 여러 이단 교리들을 정죄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심을 정통교리로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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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어느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에 한 교인이 죽어 장례식을 치르는데 예배를 인도하던 목회자가 죽은 교인과 성도들을 앞에 놓고 이 성도는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실 그때에는 신앙이 초보인지라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말이 다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Jonathan Edwards가 말한 것처럼 이미 고인이 된 그 사람에 대해 비록 그가 외형적으로는 신앙생활을 잘한 것처럼 보였을지는 모르지만 내적으로 중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장례를 맡은 목사가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람이 구원받는 것에 대해 천국에 갔다, 안 갔다말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최종판결을 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8, 20:11-15).  예를 들어 어떤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설교를 할 때 여러분은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말을 듣는 사람 전체가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닌 것처럼 분명 그 말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지옥에 갈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7:21).  사실 구원의 문제만큼은 신중하게 다루어야 하고, 사람들 마음에 들려는 인간적인 욕망 때문에 값비싼 대가를 치른 생명의 복음을 싸구려 다른 복음으로 대처하지 말아야 합니다(1:8).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성경에 보면 한 때 믿음 생활을 잘하다가 타락한 사람들이 나오는데, 칼빈주의자들이나 웨슬리주의자들은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들을 내놓고 있지만,  한 가지 만큼 확실한 것은 이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회심의 많은 증거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을 배반한 가롯유다는 주님과 함께 지내면서 삼년 동안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생활을 하면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들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9:1-6).  나아가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사람들( 7:21-23)바울의 동역자이며( 24), 사랑을 받았던 데마는( 4:14), 세상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리스도를 헌신짝처럼 버렸고(딤후 4:10), 마술사 시몬 역시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세례를 받았지만( 8:13), 성령의 능력을 주고 사려다 베드로 사도로부터 무서운 책망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8:18-23), 이들의 공통점은 한결 같이 한 때 그리스도를 믿는 가운데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칼빈주의자들 입장에서 보면 구원은 예정의 토대에 의존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들은 처음부터 참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고, 반면 웨슬리주의자들 입장에서 보면 구원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이들이 처음에는 참된 신자였지만 죄로 인해 타락의 길을 갔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그리스도를 믿고 진정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회심의 증거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먼저 로마서 815-16절에서 나오는 말씀처럼 우리가 주님의 자녀임을 보여주는 성령의 주관적인 증거가 있는데(요일 4:13), 이 증거는 대체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로 성령께서 인도하신다는 느낌을 수반하지만( 8:14), 만일 성령께서 진정으로 개인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신다면 그는 소위 바울이 말한 성령의 열매라고 부른 성품들을 형성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5:22-23).  물론 문제는내가 이러한 특징들을 가운데 완전하게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이 나의 삶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다른 사람들이 이런 특징들을 나의 가운데서 보고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사실 신약성경에는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이와 같은 성품으로 다른 사람들을 그럴듯하게 속일 있었다는 예를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 안에는 후메네오와 빌레도처럼 다른 형제에게 상처를 입히고 혼란과 분열을 야기 시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딤후 2:17-18), 이들의 사역의 결과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무너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대화를 하든, 기도를 하든, 어떤 사역을 하든지 간에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예수님의 하신 말씀처럼 삶의 열매를 통해 그들을 있다는 것입니다( 7:16-20). 

 

이러한 성령의 열매와 관련된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의 중요한 부분은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요일 2:4-6).  물론 완벽한 삶을 살거나 혹은 완전한 삶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의 삶이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고, 더 나아가 말하고 행동하는 일에 그분의 형상을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4:25-32).  다시 말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 같이( 2:17-22), 진정으로 회심했다면 삶 가운데 분명히 순종의 결과가 나타나야 하고(요일 3:9-10, 24, 5:18), 무엇보다도 그 순종의 결과를 보일 수 있는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가 다른 형제들에 대한 사랑입니다(요일 3:14, 25:31-46).  따라서 누군가 진정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그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많이 읽혀지는 구절 중에 하나인  요한복음 316절의 말씀과 같이 예수님을 계속 믿을 것이며, 또한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고( 1:23), 처음 시작할 때 믿은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을 것입니다( 3:14).  반면에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은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7:21), 삶이 불의로 가득하거나(13:23-27), 주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의 삶을 저버린(14:21), 가룟유다, 혹은 데마와 같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세상으로 돌아간다면(딤후 4:10), 그는 실제로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딤후 4:10).   

 

이처럼 신앙을 저버리고 떨어져 나간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은 애초부터 그리스도인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혹은 이 사람은 한 때 그리스도인이었으나 더 이상은 아니다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견해 모두 믿다가 타락한 사람에게 주는 메시지는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칼빈주의자와 알미니안주의자, 그리고 웨슬리주의자들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떨어져 나간 사람의 과거에 대한 해석에는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에 대한 구원의 메시지, 당신의 구원을 위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라는 말에는 차이가 없어야 합니다.  사실 오늘날 복음적인 교회에서 균형 있는 교리를 가르치는 대신 목회자들이 변질된 교리, 즉 한번 신앙을 고백하거나 물세례 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식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11:52).  그 결과 전혀 거듭난 적이 없는 사람도 물세례를 받을 때 입술로만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7:21), 그렇지 않다는 거짓된 확신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 지금 현대 교회의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가?”라는 질문이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없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주를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믿고 견디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0:22,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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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가 한계를 갖는 이성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신비이기 때문에 어떠한 이유로도 그 상태를 전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굳이 예를 들자면 인간의 육신과 영혼의 연합 그리고 철과 열의 연합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은 사람의 신체와 영혼의 연합과 여러가지 면에서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육체와 정신이란 두 실체가 존재하지만 혼합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상호 작용 역시 그렇습니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살인이 금지되고 육신이 존귀하게 여겨집니다.  그리스도의 인성 또한 신성을 취한 로고스 인격과 연합되었기 때문에 영화를 누립니다.  또한 철과 열의 연합 역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과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용광로 속의 철은 열과 연합되어 있으나 양자는 서로 구별됩니다.  그리스도의 양성도 서로 연합되었으나 양자는 혼합되어 하나가 되지 않고 서로 구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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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정확한 시점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아십니다(24:36).  인간이 생각지 못하는 때 오십니다.  따라서 항상 예비하고 있어야 합니다(12:40).  도적 같이 오십니다(살전 5:2).  그래서 깨어 자기 자신을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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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세 번째 왕인 솔로몬이 기브온의 회막에서 일천 번제를 드린 날 밤에 여호와께서 그의 꿈에 나타나셔서 그가 원하는 대로 지혜와 지식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대하 1:12).  또한 여호와께서는 그의 정직하고 겸손한 소원 이외에도 부와 재물과 존영(尊榮)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솔로몬은 지혜와 지식을 얻었으며 슬기로운 통치를 하였고 부와 존영도 얻게 되었다.  그의 지식은 모든 식물과 동물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였으며(왕상 4:33), 이러한 지식을 잘 활용하여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였으며 여러 나라들과 무역을 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의 지혜였다.  백성들 간의 여러 사적이고 공적인 일들을 공정하게 재판하고 처리하는 그의 지혜는(왕상 3:9, 28), 다른 여러 나라까지 소문이 났다(왕상 4:34).  그러나 그는 훗날 많은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삼았으며(비교/ 7:3, 23:12), 이방 아내들이 가져온 우상들을 섬겼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의 지혜를 의심케 하는 사건었다(왕상 11:4-6).  솔로몬의 우상숭배는 결국 이스라엘 분열의 주요 원이이 되었다(왕상 11:9-13). 그리스도께서도 인정하실 만큼의 놀라운 부귀영화를 누렸던( 6:29), 솔로몬이지었지만 그의 지혜는 하나님의 축복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신앙적 불성실 앞에서 무용지물(無用之物)이었다.  즉 솔로문의 생애는 인간의 지혜와 물질적인 부요함보다는 신앙적인 지조가 더욱 중요함을 보여주는 본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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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존재가 완전한 인간이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 된다는 것은 한계를 갖는 인간 이성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신비로운 문제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이를 거부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하기 전 3년 동안이나 예수님과 같이 생활하였던 제자들조차 인간 예수가 하나님이란 사실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고난받을 때 모두 도망가며 그분의 제자임을 부인했을 뿐 아니라(18:27), 예수님께서 부활했다는 사실조차 의심했습니다(20:25).  사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인 동시에 하나님이란 사실에 대한 이러한 회의는 역사상 계속되어 왔으므로 무수한 이단들이 생겨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동시에 지녔음을 부인하는 주장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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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혼란에 빠뜨리는 죄가 당신의 성품 속에 침투하여 뿌리를 내리고 당신의 체질로 정착하여 세력을 확산시키고 있는지 살펴라.  확실히 어떤 죄들은 사람들의 기질과 성향으로 굳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하라. 

 

무조건 죄를 자신의 기질 탓으로 돌리지 말라

어떤 사람들은 불경스럽게도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죄를 자신들의 기질이나 성향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그들이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을 지는 두고 볼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의 성품이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우리의 천성적인 기질에 죄의 자양분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죄가 줄어들지 않고 계속해서 죄를 짓는 이유를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기 때문이라고 했다(51:5).  당신이 특정한 죄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당신의 성품 속에 정욕이 특정한 모습으로 분출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분툴로 인해 당신은 수치를 당하는 것이다.

 

죄의 성향은 사탄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과 관련해서 주시해야 할 점은 이와 같은 당신의 죄의 기질과 성향으로 인해 사탄과 죄가 매우 유리한 상황을 선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에게 각별한 경각심과 주의, 그리고 부지런함이 없다면 그들이 당신의 영혼을 확실히 잡아 삼킬 것이다.  실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이유로 서둘러 지옥에 떨어졌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옥으로 가는 그들의 행보는 하나님을 덜 자극하고 어느 정도 해악을 덜 끼치면서 천천히 진행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몸을 복종시켜라

몸을 복종시키는 행위는 죄를 죽이기 위한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것은 죄의 천성적인 뿌리를 역제하고 죄의 기름진 토향을 제거하여 그덜을 시들게 만든다.  로마 가톨릭 교도들은 죄를 죽이는 문제를 오로지 봉사와 고행을 자청하여 자신들의 육체를 복종시키는 것으로만 해석한다.  때문에 이들의 유혹으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직접 행하신, 소위 미련한 방법들을 무시한다.  하지만 몸을 복종시키기 위해 금식과 철야 등과 같은 방법으로 천성적인 욕구를 죽이는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자신의 몸을 외형적으로 손상시키고 약화시키는 행위 자체가 어떤 위력이 있거나 그런 행위를 통해 자동적으로 죄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대신 우리는 그런 행위가 죄의 천성적인 뿌리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단순한 수단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을 인식하지 않을 때 사람은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쇠약하게 만들 수 있다.

둘째, 금식이나 철야기도와 같은 수단들이 그 자체에 어떤 마술적인 힘이 있기 때문에 죄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정말로 그러한 효과가 있다면 이 세상의 중생하지 않은 사람도 성령이 도움 없이 죄를 죽일 수 있게 된다.  이런 수단들은 성령이 자신의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 때때로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가톨릭 교도들은 올바른 인식의 부재 속에서 그와 같은 사실들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이 죄를 죽이기 위해 취하는 행동들은 성도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기보다 들판의 말이나 짐승들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앞의 논의를 요약한다면 죄가 우리의 천성적인 기질이나 성향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영혼이 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와 같은 죄의 천성적인 뿌리들을 억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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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했던 제자들은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재림하실 것을 증거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 성도들의 복음 전파의 핵심이기도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실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시련을 이겨내도록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면서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 너희로 즐거워 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습니다(벧전 4:13).  그는 또한 양무리를 돌보는 장로들에게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고 권면했습니다(벧전 5:4).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성도들의 부활이 있을 것을 말했고(고전 15:23), 그리스도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것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살전 4:15-16).  사도 요한 역시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며 각 사람이 그것을 육안으로 볼 것이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창으로 찌른 자들은 자신들의 악행 때문에 통곡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1:7).  예수님의 젖동생이며 야고보서의 저자인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고 말했습니다(5:8).  이처럼 그리스도의 재림은 초대교회 시대부터 사도들을 비롯하여 성도들이 굳게 믿는 기독교 진리의 기초이며 역사상 신실한 성도들이 대망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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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인성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자라거나 성숙해졌습니다.  이것은 사람으로서 정상적인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출생하자마자 성인의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말을 하고 도덕적으로 완전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것이라고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2:52),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웠습니다(5:8).  그리스도께서 우리처럼 시행착오를 겪은 것은 아니었지만 도덕적인 갈등 상태를 극복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신성은 나이와 상관 없었습니다.  신성은 그 속성상 이미 완전한 것이므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양적으로 성장한다거나 질적으로 완전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신성은 성육신 처음부터 완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과 연합했으나 신성은 어떠한 손상이나 제한을 받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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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의 사람

광야의 소리 2018. 6. 13. 13:18

형제들이여!

말씀을 전할 때에

신학적 지식을 가지고 장난하지 마라. 

그렇게 하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당신을 머리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할지는 몰라도

그들의 영혼은 여전히 어둠 가운데 있을 것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 시대,

도덕이 땅에 떨어진 이 시대,

영적으로 암흑이 지배하는 이 시대,

이런 시대에 필요한 것은

교리의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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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경우에 따라 사람이거나 신()이시라면 그는 두 인격체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해 볼 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도 불리고 사람으로도 불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 불릴 때에도 인간적 속성이 있었고, 역으로 사람으로 불릴 때에도 신적 속성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8)라는 구절에는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간이란 사실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영광의 주는 그리스도의 신적 호칭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것은 그가 인간이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고 육신이 없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라’(4:10)는 구절 역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간이란 사실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내리셨던 그는 그리스도의 인적 호칭이지만 만물을 충만케 하려는 것은 그의 신적 속성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이 만물을 충만케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 구절들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신() 또는 사람()  두 인격체가 아니라 신인(神人)이신 한 인격체로서 활동하셨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로 그리스도는 신인으로서 기적을 행하셨고, 신인으로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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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여러 차례 자신이 죽음에서 부활하여 승천한 후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세상에 오실 것을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실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 마지막 때의 징조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는 번개의 번쩍임 같이 임할 것이며(23:3, 37), ‘인자가 구름을 타고 천사들과 함께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실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24:30, 25:31).  그리스도는 체포되어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섰을 때 자신을 정죄하는 대제사장에게도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62, 21:27).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밧모섬에 있던 사도 요한에게 천사를 보내어 장래일을 알리신 후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22:7)고 말씀하셨습니다(2:12).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매우 구체적으로 그리고 거듭하여 영광스럽게 재림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확실히 이루어질 것에 대한 가장 큰 보증이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고 이를 대망해야 합니다(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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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옛날 그의 백성에게 

그러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그의 백성에게 그의 마음을 전달하실 있으며,

실제로 전달하시고 계신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 구름의 움직임이나 나팔소리로

그의 마음을 우리들에게 전달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말씀과 성경을 통해 그의 마음을 우리들에게 전달하신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감각으로 느끼도록 하는 그런 방법도 사용하시지만,

항상 그런 방법으로 우리들을 인도하시지는 않는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해와 양심과 마음을 통하여 작용하는 그런 일로써

우리들을 인도하신다.

언제나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당신의 모습을 보이시고

당신의 뜻을 전달하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와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가?

 

-C. H. 맥킨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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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취하신 것은 하나님의 상태의 변화일 뿐이지 본래부터 하나님이신 사실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낮아지셔서 인간이 되셨으나 본래 하나님으로서 근본 성질은 계속 지니고 있었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계속 하나님이셨으나 단지 하나님으로서의 영광과 권세를 잠시 보류하시고 인간 구원을 위해 비천한 인간의 몸을 취하셨던 것입니다(2:6-11).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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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환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환경을 보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어느 곳에 동참하기를 원하시는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도 

그분이 인도하시는 방향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환경을 사용하실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경과 기도를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에 비추어

이것을 평가해야 합니다.

영적인 표징들을 살펴보는 것도

환경을 통해 지시를 주시는 것을 있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발을 걸음 내딛게 하시는 것은

지금까지 그분이 이미 당신의 삶에서 하고 계시던

역사의 연장 선상에 있을 것입니다.

어떤 때는 혼동스럽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할 있습니다.

나쁘거나 어려운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절대로 환경을 보고 

상황에서의 진리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듣기 전까지는

환경 가운데의 진리가 무엇인지 결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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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역시 성경의 기록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로마서 83절에서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신적 인격이 신성을 취한 것을 나타냅니다.  또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출생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했습니다(1:14).  이것은 그리스도의 로고스(말씀) 인격이 인성을 취하신 사실을 시사합니다(1:1).  이와 같이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신성과 인성의 두 가지 속성을 가지셨지만, 두 인격체가 아니라 신적 인격이 인성을 취한 단 하나의 인격을 지닌 분이신 것을 증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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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죄를 심각하게 인식하게 되면 그 죄의 권세에서 해방되기 위해 끊임없이 갈망해야 한다.  한 순간이라도 당신의 마음속에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려는 생각이 있으면 안 된다.  세상적인 갈망은 사람으로 하여금 투구하는 대상에 이르도록 자극할 뿐 그 외에는 아무런 가치나 효과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영적인 갈망은 다르다.  영적인 구원을 바라고 갈망하는 행위는 그 자체가 은혜가 되어 영혼으로 하여금 그것이 추구하는 대상을 닮도록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고린도교인들이 행하는 회개와 슬픔을 언급할 때 그들의 갈망은 그 자체가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표현했다(고후 7:11).  자신 속에 거하는 죄와 그 능력에 대해서 바울은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실로 그의 마음은 구원을 받기 위한 열렬한 갈망으로 충만해 있었다.  위대한 성인들은 이처럼 자신들의 죄와 대항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있었다.  그런데 특정한 정욕의 광기와 권세로 당신이 그런 영적 열망을 희석시킨다면 어떻게 강력한 열망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죄에서 해방하고자 하는 열망이 없다면 결코 당신은 구원받을 수 없다.  이 점을 진실로 깨닫는다면 당신의 마음은 경계심을 갖고 대적자와 싸우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모든 수단과 기회들을 강구할 것이다.  그리고 적을 물리치기 위해 주어지는 모든 도움들을 사용할 것이다.  강력한 열망은 성도들에게 명령으로 주어진 항상 기도하라는 말의 본뜻이기도 하다.  강력한 열망을 가져야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런 열망을 통해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힘을 발휘하게 되고,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향해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마음속에서 항상 갈망하는 자세를 견지하라.   바라고 울부짖으라.  당신은 그런 다윗의 예를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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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31과에서는 순종에 대해 배우게 된다.  훈련생들은 이 과를 통해 순종이 성도의 마땅히 행해야 할 바임을 배우게 되며, 순종의 원천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며, 순종하는 사람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순종의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순종하지 못했던 자신의 삶에 대해 반성하고 순종에의 열망을 새롭게 다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소책자 『헌신』 (네비게이토 출판사) 31과의 좋은 참고도서가 된다.  이 책은 헌신이란 무엇이며, 왜 헌신해야 하는지, 무엇에 헌신해야 하는지, 그리고 순종에 이르는 단계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있다.

 

현대 문화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대량생산에 대한 우리의 능력과 욕망이다.  제자 삼는 사역에까지 “대량 생산 방식”을 도입하려는 생각을 갖기가 쉽다.  그러나 제자를 삼는 일은 대량 생산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제자들은 대량으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서 하나하나 만들어지는 것이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선 것에 대해 칭찬하였듯이(살전 1:9 참조), 참된 헌신은 어떤 것으로 돌아설 뿐만 아니라, 어떤 것으로부터 돌아서는 것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헌신이란 자신을 섬기는 것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섬기는 데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우리는 왜 전적으로 헌신해야 하는가?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돌아보면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릴” 것을 권면하고 있다.  또 다른 헌신의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헌신된 사람들을 통해서 그의 일을 이루신다는 사실이다.  인류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던 위인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들은 무엇엔가 헌신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에 헌신해야 하는가?  첫째는 하나님 말씀에 헌신해야 한다.  둘째는 하나님의 뜻에 헌신해야 한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해야 한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그 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 분의 일로 부르신 분을 사랑해야 한다.

 

참된 순종에 이르는 단계는 크게 네 가지로, 우리 자신은 어디에 와 있는지 늘 점검해 보아야 한다.  첫째 단계: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  하나님께서 내게 뭘 원하시는지는 신경 쓰지 않겠다.  둘째 단계: 하나님께서 먼저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면, 나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드리겠다.  셋째 단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먼저 드리겠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리라 믿는다.  넷째 단계: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든 안 주시든 관계없이 나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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