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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1.11 유대인들의 바벨론 유수(幽囚) 및 귀환의 역사

고대 세계에서는 보통 정치적인 이유로 인하여 한 집단이나 한 민족과 같은 공동체를 국외로 추방하는 일이 있었는데이를 일명 유수 정책’(幽囚 政策)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책은 흔히 적대시 하는 민족의 세력을 분쇄하거나 또는 어느 한 지역을 식민지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그 일례 중의 하나로 들 수 있는 것이 곧 유대인들의 베벨론 유수 사건이다(대하 36:20).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침략을 받고 그 살아남은 자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된 긍극적인 원인은 백성들의 죄악 때문이었다(대하 36:11-2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찍부터 이스라엘을 보존하시며 여호와 신앙을 지속시키려고 계획하셨으니(참조/ 44:24-28), 때가 이르자 그 경륜을 따라 유대인들은 포로로 억류되어 있던 바벨론에서 팔레스틴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되었다(대하 36:22-23). 역대하 36장은 유대인들의 이러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바 이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려 한다.

 

1. 바벨론 유수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간 최초의 경우는 애굽과의 갈그미스 전투를 끝낸 느부갓네살 2, (B.C. 605-562)가 예루살렘으로 진격했던 B.C. 605년의 일이다.  이때 느부갓네살은 자기를 배신한 여호야김(B.C. 608-597) 왕의 목숨을 살려주었지만 유다의 방백 중 몇 사람을 바벨론으로 끌고 갔는데, 그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등이 있다(왕하 24:1-16).  두 번째의 경우는 B.C. 597년에 발생하였는데(왕하 24:1-16), 여호야김을 징벌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쳐들어왔던 느부갓네살은 죽은 여호야김의 뒤를 이은 여호야긴(B.C. 597) 왕과 그의 어머니 및 유다의 고위 관리들을 바벨론으로 잡아갔다.  세 번째로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유수된 사건은 B.C. 586년에 일어났다.  이때 예루살렘은 황폐화되고 빈민들을 제외한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 갔다(왕하 25).  이로써 북이스라엘의 멸망(B.C. 722). 이후 그나마 국권을 수호해 오던 남유다마저도 멸망하게 되었으며 유대인들은 1948년에 이스라엘 공화국을 수립하기까지 식민지인으로 서러움을 겪게 되었다.  이상과 같은 연유로 인해 바벨론에 잡혀간 유대인들은 메소포타미아의 남쪽지방에 정착하게 되었다.  에스겔은 바벨론의 동남쪽 Nippur 근처에 있던 그발 강가의 Tel-Abib에 유대인들이 정착하고 있었음을 증거하고 있기도 하다( 3:15).  그런데 유대인들은 일반 전쟁포로와 달리 바벨론 왕실의 보호를 받았으며 자유롭게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며 종교적인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예배와 친교를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모임에 의해서였는데 저들은 이러한 집회를 통하여 더욱더 믿음을 굳게 하며 고국 땅으로 돌아갈 소망을 날로 불태웠다(참조/ 137).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은 바벨론에서 토지를 일구어 농작물을 경작하거나( 29:5), 사업에 종사할 수도 있었으므로(참조/ 17:4), 어느 정도 물질적인 필요를 충족시킬 수도 있었다.  이러한 생활을 통하여 일부 일부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관습에 동화되기도 하였는데, 그들은 이람어를 사용하고 우상을 용납하며 이교 의식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에스겔과 같은 인물을 중심하여 단합한 유대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조국을 재건할 날만을 소망하였으니 그 같은 희망이 성취할 전조(前兆)로 옥에 갇혀 있던 여호야긴 왕의 석방이 이루어졌다(B.C. 560, 왕하 25:27).  그리고 마침내 유대인들이 팔레스틴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된 날이 왔으니 그것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 2세가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킴으로써이다.

 

2. 귀환

B.C. 539년에 바벨론을 명망시킨 고레스는 같은 해에 유대인들의 본국 귀환을 허용하는 칙령을 공포하였다( 1:1-4).  이에 스룹바벨이 이끄는 최초의 유대인 귀환자들과 예수아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 건축을 위한 지대(地臺)를 놓았다( 3:8-13).  그 후 계속되는 성전 건축 공사는 방해자들의 책동에 의해 일시 중단되는 등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다가 B.C. 517년에야 겨우 완공을 보게 된다( 6:15).  한편 에스라가 이끄는 두 번째 귀환자들은 B.C. 457년에 예루살렘을 향하여 출발 하였다( 7:7-8).  예루살렘에 돌아온 에스라는 당시 그곳에 만연해 있던 죄악의 요소를 제거하는 부흥 운동을 일으켰는데 그 일환으로 백성들이 이방인과 결호하는 것을 금하며 안식일 준수를 꾀하였다( 8-10).  이뿐 아니라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1, B.C. 464-423) 밑에서 관리로 있던 느헤미야도 B.C. 444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그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다( 3).  이처럼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당시의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베발론 유수 이후의 유대인 사회를 재정립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였다.  한편 이스라엘인이 유다(Judah)의 단축형인 유대인’(Jew)으로 불려지게 된 것도 바로 이 시기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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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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