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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17 거짓목사인가 타락한 목사인가?

달라스 신학대학 구약학 교수였던 Jack Deere 목사는 처음에는 예언사역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예언사역자 Paul Cain를 만났을 때 그의 생각이 바뀐 것을『놀라운 예언의 은사』에서 이렇게 회상을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자 외에 오늘날에도 실제로 그 시대의 예언자와 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말은 나에게 사기처럼 들렸다. 우리에게 예언자 대신 우리를 인도하는 성경책이 엄연히 있지 않은가? 예언자의 필연성이나 필요성이 없는 이 시대에 왜 예언자가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이런 나의 관점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속마음을 꿰뚫어보고 가지고 있는 마음의 문제들, 특히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일들을 하나하나씩 정확하게 집어내는 Cain의 예언의 능력을 보면서 하나님은 더 이상 예언자를 사용하시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오늘날에도 예언자가 존재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사실 Paul Cain의 예언의 능력은 거의 전설적이었고 그가 집회하는 곳마다 참석한 사람들의 문제를 정확히 맞추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Cain이 알코올 중독과 동성애에 빠졌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고 본인 스스로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죄에 대해 용서해 줄 것과 상담치료 받을 것을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한 때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던 사역자들 중에 돈, 이성, 술, 마약, 동성애, 등등의 문제로 사역 중간이나 말기에 가서 범죄 할 때, 목사들 중 어떤 이들은 자신은 그런 부류의 사람과 다르고 스스로 올바른 주의 종이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죄를 저지른 사역자에 대해 ‘거짓목사’, 혹은 ‘거짓예언자’라고 낙인을 찍어버리고 마녀사냥을 하듯 온갖 정죄와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입니다.  사실 Paul Cain은 처음부터 거짓선지자로 사역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역자들이 하는 것처럼 열정적으로 주님의 사역을 시작했는데 그에게 많은 열매가 나타나고 명성이 높아지다 보니까 초기사역과 다르게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벗어나 기도와 말씀이 소홀해지면서 자만심이 그를 죄에 빠지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대형교회를 목회하는 사람들 중에 여러 가지 문제로 사회에서 지탄을 받고 교회 내에서도 손가락질을 받는 목회자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들 모두가 ‘거짓목사’라고 말할 수 없듯이 Cain 역시 거짓예언자가 아니라 죄 속에 허덕이는 한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고린도전서 10장12절을 보아 알 수 있듯이 사역에 있어 자유로운 사람은 없고 그가 한 시대에 쓰임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 순간 어떤 결정적인 계기를 통해 타락한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것을 가지고 모든 성령의 사역에 대해 비방하는 것인데 Jonathan Edwards의 말을 인용한다면 인간에게 있어 가장 커다란 약점은 새롭고 흔치 않은 어떤 일을 구분하는데 있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을 도매금으로 인정하거나 정죄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떤 계기가 되어 그곳에서 나오게 되면, 본인 말로는 그곳을 이단으로 정죄하며 거기서 일어나는 어떤 체험들, 즉 눈에 거슬리거나 질서적이지 않고 경건해 보이지 않는 현상들에 대해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미혹의 영이라고 비판을 가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기도회나 선교를 위한 모임 혹은 기독교 안에서 일어나는 중보기도운동, 방언, 예언, 기름 부으심, 등을 무조건 신사도 운동과 연관시켜 신랄하게 비판을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비판의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Lloyd Jones가 말한 것처럼 언제나 같은 문제를 들추어내어 논쟁을 좋아하는 마귀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논쟁과 비판적인 정신을 소유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본인 스스로가 하나님의 일군이며 남들보다 의롭고(눅 18:9-14), 자신만이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열매’(갈 5:22-23)이지 ‘성령의 은사’(고전 12:4-11)가 아니라고 주장을 합니다.  사실 은사가 필요치 않다는 가르침은 성령을 거스리는 교만한 생각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니라 반쪽짜리 신앙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Jonathan Edwards의 말을 빌리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것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자들은 그 전체를 거부해 버리기 때문에 그가 목사이든 평신도이건 당장 그들을 거짓목사나 위선자로 낙인찍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본인 눈에 들보가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인데(마 7:1-5), 예를 들어 사십 년 동안 사사직을 지낸(삼상 4:18), 여호와의 제사장 엘리(삼상 1:3)가 영적 분별력을 상실해서 한나에게 빗나간 말을 하거나(삼 1:12-14), 혹은 아들 문제로 인해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에게 책망과 저주를 받고(삼상 2:27-36), 나중에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삼상 4:15-18), 아브라함처럼 평안히 장사되어 죽은 것이 아니라(창 15:15), 목이 부러져 죽었다고 해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자식 농사를 잘못한 ‘거짓목사’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형교회를 목회한 모세 역시(출 12:37), 세상에 그 어느 누구보다도 겸손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평가하지만(민 12:3), 그에게는 참지 못하는 분노(민 20:10-12)와 망령된 입술이 있었고(시 106:33), 그로 인해 광야에서 떠돌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는데(신 34:1-7), 그렇다고 해서 그를 ‘거짓목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다만 그가 사람을 죽인 살인자이며(출 2:11-14), 생각 없는 경솔한 말과 분노 때문에(약 1:20), 실수를 했을 뿐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확실하게 드러난 이단이 아닌 이상 말의 실수나(약 3:2), 경솔한 행동 때문에(눅 9:54), 거짓목사라고 주장하거나 혹은 교회 안에 어떤 현상이 일어난다고 해서(행 2:6), 그것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고 단정 짓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놓고 Edwards는 『부흥론』에서 “많은 사람이 신중하지 못하게 행동하고 비상식적으로 행동한다고 해서 사람들 사이에 일어난 역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 없다. 판단상의 많은 실수가 있고 사탄이 그 역사에 망상적인 것들을 섞어놓았다고 해서 그 역사 전체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는 증거도 될 수 없다. 구원의 은혜를 체험했다고 생각되던 어떤 사람들이 심각한 실수나 추문을 일으키는 행실에 빠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역전체에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는 증거는 못된다. 약간의 모조품이 있다고 해서 전부가 가짜라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그러면서 어떤 역사가 나타날 때 종교개혁 시대의 Calvin처럼 자신과 신학적인 견해가 다른 사람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무서운 정죄의 자리에 앉지 말라고 경고합니다(마 7:2).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자녀라고 고백하지만 우리들 중에 거룩해서 죄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롬 3:9), 모든 목회자들 마음속에도 무지와 부패가 남아있기 때문에 사역을 행할 때 높은데 마음을 품는다면(롬 11:20-21), Cain처럼 얼마든지 타락한 목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고전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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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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