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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09 삼위일체를 설명하기 위한 유비들

영국의 저술가이자 성직자인 Thomas Adams는 “삼위일체는 오직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이성의 판단으로 그 신비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는데 사실 이 교리는 신학자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분으로서의 하나님(신 6:4, 갈 3:20)과 세 분으로서의 하나님이(고전 8:4-6, 요일 5:20, 고전 3:16), 동시에 있는 이 신비한 현실에 대해 “삼위 하나님을 한 본체와 세 실체”로 대비되는 개념의 용어로 표현을 하고는 있지만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언어의 한계가 분명히 제안된 표현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께서 완전히 일체를 이루시는 한 본체요, 존재가 영구불변한 실체이고, 또한 상호 절대 독립된 삼위, 곧 세 분의 인격체이기도 하지만(시 2:7, 마 3:16-17, 행 5:3-4), 바로 세 분인 동시에 한 분이라는(딤전 1:17), 사실을 추호의 차이나 기울어짐이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 교리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상호 모순이 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존재 안에서는 신비하게 구현된 그분만의 독특한 존재 양식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만약 이러한 논리적 모순을 초월하여 구현된 진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어떻게든 자연계와 인생에 '유비'(類比)시켜 이해하고자 한다면 혹은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거나 부분적인 이해에 그치는 오류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초대 교부들은 삼위일체를 표현하기 위해 유비를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Augustine이 『Of Faith and the Creed』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 영혼의 구조를 끌어내기 위해 유비를 사용했지만 그가 나중에 고백한 것은 유비와 흔적을 자연과 인간에게서 발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사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Calvin은 이 문제를 놓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해 유비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구별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해 인간사에서 비유를 든다는 것이 관연 타당한가 하는데 대하여 나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옛날 사람들은 가끔 이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저들은 자신들이 소개하였던 그 유추의 전부가 매우 부적당하다는 것을 동시에 고백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여기서 그러한 일체의 무분별한 행동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를 부적당하게 소개함으로써 사악한 사람에게 비방의 기회를 무지한 사람에게 망상의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표현되어 있는 그 구별에 대하여 묵과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한 분이지만(딤전 2:5), 성경은 성부(갈 1:3), 성자(요 1:1), 성령(딤후 3:16)을 구별하기 때문에 매우 신중한 마음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유비들이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 유비들을 포함하여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접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이 교리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한 인간 안에 있는 “지, 정, 의”를 연합하여 말하는 것이나 나무의 세 부분인 “뿌리, 줄기, 가지”, 혹은 물의 세 형태인 “물, 증기, 얼음”을 통한 유비들은 오히려 기독교의 독특한 삼위일체 교리를 훼손하거나 오해에 빠뜨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유비로 삼위일체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사실 성경은 하나님의 성품의 여러 면을 보여주기 위해서 자연과 생명으로부터 취한 많은 비유들, 즉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어 반석과 같고(사 26:4), 돌보심에 있어 목자와 같다는(시 23:1-3), 표현을 사용은 했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경은 이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아무런 비유도 들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그 어느 유비도 삼위일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Louis Berkhof이 말한 것처럼 다소 가치는 있겠지만 모두 결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삼위일체에 대한 표현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마 28:19), 이 말은 분명 다른 인격체를 이야기 하면서도 가족관계에 있어 긴밀한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Philip Melanchthon이 말했듯이 이 교리는 연구하는 것보다는 그냥 믿고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낫을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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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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