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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02 유형교회와 무형교회

오늘날 교회당 건축 문제를 두고 수많은 분쟁과 분란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 세상 사람들 보기에도 그렇고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그다지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흔히 ‘교회’라고 할 때는 단지 눈으로 볼 수 있는 교회, 즉 건물로서의 예배당을 이야기 할 때가 많지만 본질적인 측면에서의 교회란 단순한 건물 그 자체가 될 수 없고(마 24:1-2),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마 16:16), 그분과 연합된 선택받은 자들의 모임을 ‘참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엡 4:15-16).  다시 말해 비록 외형적으로 구체적인 형태를 띠지는 않지만 실질적인 교회란 눈에 보이는 건물에 있지 않고(롬 12:1), 사도신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성도가 서로 교통하듯’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성전이나(눅 18:10), 집에서(몬 2절), 아니면 다락방(행 1:13-14), 그 어느 장소와 상관없이 두 세 사람이 모여(마 18:19).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린다면(요 4:21-24), 그곳이 바로 주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교회에는 구성원들 모두가 죄인인(롬 3:9),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엡 2:8), 그리고 이렇게 모인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 혹은 ‘그리스도의 몸’(골 1;18), 또는 ‘그리스도의 신부’(계 22:17), 더 나아가 ‘새 예루살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계 21:2).

 

이렇게 불리어지는 교회는 눈에 보이는 “유형/가견적 교회”와(고전 1:2, 살전 1:1, 몬 1-2절),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불가견적 교회”로(엡 1:10, 골 1:18, 24), 구분될 수 있는데 이것은 구교 당시 종교 개혁을 하기 전에는 이런 구분이 없었지만 종교 개혁 때부터 구분하게 되었고 이 구분을 처음 시도한 사람이 Martin Luther였으며, John Calvin은 이 문제에 대하여 강조하기를 유형교회와 무형교회는 교회의 양상(樣相)이 아니라 영적 교회와 조직적 교회의 양면(兩面)을 말한 것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먼저 넓은 의미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교회’는 현재까지 구원받은 자들뿐만 아니라 아직 부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나 장차 구원받게 될 모든 피택자(被擇者)들까지 포함하고 좁은 의미에서는 현재 지상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피택자들로 구성된 교회를 가리키는데 이 무형교회는 교파와 교단과 상관없이 거듭난 참 신자들로 구성된 교회이지만 본질상 영적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참 신앙을 소유하며 참된 영적교제를 이루고 있는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하고(엡 1:22), 하나가 되어 있는(갈 3:28),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들’이지만(벧전 2:9), 오직 하나님만이 이 무형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다(딤후 2:19).

 

이 무형교회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보편적 또는 우주적 교회는 무형적이다. 이 교회는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그 아래 하나로 지금까지 모여 들었고 지금 모여 들고 있고 장차 모여 들게 되는 택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로 구성된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몸이며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그의 충만이다”  Louis Berkhof도 무형교회에 대해 “이 교회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영적이며 영적인 본질이 육안으로 식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에 누가 이 교회에 속하였고 누가 이 교회에 속하지 않았는지를 결정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연합은 신비적인 연합이다. 예컨대 거듭남, 참된 회개, 참된 믿음, 그리스도와의 영적 교제, 등과 같은 구원의 복들은 모두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외형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을 보고 영적 변화의 외적 증거들을 볼 뿐이지 실제로 그 사람의 마음이나 영적인 상태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누가 참 신자인지 거짓 신자인지를 구분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아시며(민 16:5), 이 무형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삶과(롬 12:1-2), 예배를 통해(요 4:23-24),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히 12:33), 즉 보이지 않는 교회에 참예하게 됩니다.

 

반면에 유형교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들이 지상에서 신앙생활을 영위하며 구원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도록 하기 위해 주님께서 세우신 조직을 가리키는데 Wayne Grudem은 유형교회에 대해 이런 정의를 내립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불신자)들이 볼 수 있는 대로의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참된 신자들 그리고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를 아는 사람들이 보는 대로의 교회를 가리킨다”  이 말의 의미는 무형교회는 거듭난 신자들을 포함한 교회인 반면에 유형교회는 인간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교회로서 비록 참된 신자의 눈으로 볼 때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성도들의 공동체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불신자의 시각으로 볼 때에는 거듭나지 않는 자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무형교회와 유형교회는 두 개의 교회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이지만 이 두 교회의 구성원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이유는 유형교회 구성원 가운데 장차 구원에 이르지 못할 가라지가 섞여 있을 수 있고(마 22:14, 25:32), 아직 유형교회의 구성원인 되지 않았으나 장차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을 무형교회의 구성원이 세상에 남아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행 13:44-48).  쉽게 말하면 무형교회에 속한 교인이 반드시 유형교회의 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유형교회에 속한 교인이 반드시 무형교회의 교인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형교회 안에는 예수님이 경고하신 것처럼 양의 탈을 쓴 거듭나지 못한 거짓 목사들과(마 7:15), 후메내오와 빌레도와 같은 거짓 선생들(딤후 2:16-18), 그리고 회심의 경험은 전혀 없고 육신적인 복(빵)만을 추구하는 거짓된 교인들도 많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요 6:26-27).  Calvin은 『기독교강요』에서 이 문제를 놓고 Augustine의 말을 인용하여 “밖에도 양이 많고 안에도 이리가 많다” 그러면서 “교회 안에 이름과 외형만 있고 그리스도는 전혀 없는 위선자들이 많이 섞여 있다”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알곡에 가라지가 섞일 수 있다는 것인데(마 13:24-30), 사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LutherCalvin이 교회의 무형적인 면을 많이(물론 사도로부터 끊임없이 계승되어온 유형적인 거대한 조직이라는 로마 카톨릭의 가르침에 반대해서) 강조했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 것은 주께서 자신의 백성, 즉 누가 참 신자인지 거짓 신자인지를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딤후 2:19).  그러나 우리가 이 두 가지 형태의 교회를 간과해서는 안 될 이유는 만약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교회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유기체로서의 교회와(롬 12:15, 엡 3:6), 조직체로서의 교회를(마 18:15-17, 행 6:1-6), 무시하는 ‘무교회주의’가 되기 쉽고, 반대로 눈에 보이는 유형교회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외형적 제도만을 강조하는 가톨릭교회와 같은 ‘교회 지상주의’로 빠지기 쉬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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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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