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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7.25 성령을 훼방하는 죄란?

신앙에는 중립이 존재할 수 없고(막 9:40),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믿든지 아니면 마귀에게 속해 살던지 둘 중의 하나이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간지대란 없습니다(요8:44-47).  물론 어중간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결국 예수님 앞에서 토하여 내치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으며(계 3:15-16), 주님은 신앙에는 중간지대가 없다는 것을 마태복음 12장30절에서 단호하게 말씀하셨는데 이 말의 의미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끝까지 중립적으로 남아 있기란 불가능하며 적극적으로 주님을 좇지 않는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으로 간주되고 사탄을 좇아가는 추종자들이라는 것입니다(눅 9:50).  한편 예수님은 신앙의 중간지대가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곧 바로 인간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마 12:31).  사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령을 근심케 할 수도 있고(엡 4:30), 그분의 역사를 제한하거나(살전 5:19), 심지어 저항할 수도 있지만(행 7:51), 이러한 죄들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와는 구분되는 것으로 얼마든지 예수의 피로 죄 용서함을 받을 수가 있는 죄들입니다(요일 1:7).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자녀가 자신도 모르게 연약하여 성령께서 싫어하시는 행동이나 말, 그리고 악한 생각들을 함으로 근심시킬 수는 있어도(사 63:10), 그것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할 때 성령을 근심시킨 것과 같은 맥락으로(마 26:69-75), 주님은 이러한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고(눅 22:31-32), 그는 회개하여 용서함을 받았으며(요 21:15-18), 사도 바울 역시 과거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라고 말하면서 그것은 자신이 알지 못했기에 범한 죄라고 고백한 적이 있었는데(딤전 1:13), 하나님은 그러한 바울을 용서해 주셨고 택한 그릇으로 사용하셨습니다(행 9:15).  이것은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한다면(사 1:18), 그 죄가 무슨 죄든지 상관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엡 1:7, 요일 1:1:9).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을 훼방하는 죄’란 어떠한 것입니까?  이 죄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다양한데 먼저 Augustine은 이 죄를 정의하기를 그리스도의 용서를 믿지 않고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며(롬 2:5), Chrysostom은 이 죄에 대해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만 있을 수 있는 죄로서 그분이 성령의 권능으로 이적과 기사를 행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시기하여 마귀의 역사로 매도한 사람들이 짓는 죄라고 하며(눅 12:10), 또한 후기 루터파 신학자들은 성령훼방 죄는 중생은 했지만 바울의 동역자 데마(몬 24절, 딤후 4:10), 또는 가룟유다(눅 6:12-16, 요 18:1-3)처럼 신앙을 도중에 버린 믿다가 타락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합니다(히 6:4-6).

 

그러나 칼빈주의에서는 이 견해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그 이유에 대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고린도전서 12장3절 말씀을 인용합니다.  즉,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성령훼방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만일 거듭난 사람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범한다면 칼빈주의에서 말하는 궁극적 구원교리와 반대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롬 8:38-39, 요 6:39, 엡 1:13-14, 벧전 1:4-5).  다시 말해 거듭난 사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상태라(요 5:24), 그 구원을 결코 취소될 수 없으며(요 10:29),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히 6:4-6, 10:26-27) ‘사망에 이르는 죄’(요일 5:16), 그리고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절대로 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롬 8:1-2).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다른 모든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있는데 왜 유독 성령을 훼방하는 죄만이 사함을 받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Louis Berkhof은 이 문제에 대해 그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나 성령의 역사보다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신 32:39), 구약 시대에 하나님을 훼방하는 자는 돌로 쳐 죽인 일과 대조하며(레 24:11),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신성 모독죄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절인 레위기 24장16절 말씀을 인용합니다.

 

사실 이러한 학자들의 견해도 참조할 필요는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말이 생긴 배경을 성경에서 찾아야 하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쳐주셨을 때 곁에서 보고 있던 바리새인들이 곧 바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했을 때 주님은 자신이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단언하시면서(마 12:22-28), 자신이 행하는 성령의 사역을 바알세불의 능력으로 돌리는 것은 인자를 거역하는 말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령을 훼방하는 것으로 이 세대에서나 오는 세대에서도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무서운 죄라고 경고합니다(마 12:32).  여기서 ‘훼방’이란 말은 신적 위엄을 손상시킨다는 말로 극단적인 비방이나 상대방에 대한 지독한 모독을 말하는데(마 9:3-4), 열왕기하에 보면 아하시야가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었을 때 살 수 있는지를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묻기 위해 사람을 보내자 엘리야가 그 사신을 만나 이스라엘에 신이 없어 바알세붑에게 사람을 보내느냐고 말하면서 그가 죽을 것을 예언합니다(왕하 1:1-18).  여기에 나오는 바알세붑은 불레셋 사람들이 숭배하는 신으로 에그론 사람들은 이 ‘파리의 주인’이 모든 질병을 치료한다고 믿은 것처럼 예수님이 성령을 힘입어 병자를 고칠 때 바리새인들은 그 성령의 사역을 더러운 ‘죽은 파리’(전 10:1)의 신에게 부탁하여 병을 고친다고 비난을 했던 것입니다(막 3:22).  이것은 참으로 대단히 무서운 반역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사역을 사단의 일로 매도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회개시키는 성령 자체를 훼방하기 때문에 절대로 회개가 되질 않아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히 10:26-27).  그러므로 ‘성령을 훼방하는 죄’란 예수님의 말씀이나 이적에 대하여 단순히 의심하거나 무의식중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이러한 주님의 이적이 나타나고 내적으로 확신을 주심에도 불구하고 심사숙고하여 고의적으로 성령의 역사에 대해 반항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한다면 어떤 역사가 나타날 때 그것이 성령의 역사인지 사람의 역사인지를 알지 못하여 대적하는 것이 아니고 확실하게 알면서도 귀신의 역사로 중상 모독하는 행위가 바로 성령을 훼방하는 죄라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사람들은 나름대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죽은 자의 부활과 천사의 활동을 믿으며(행 23:6-8), 자신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말씀을 가르쳤던(마 23:2-3), 이스라엘의 선생(신학자와 목사)들입니다(요 3:10).  사실 이들은 니고데모처럼 하나님의 일이 무엇이며 그분께서 어떻게 역사한다는 것을 분별할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지만 실제로 구원받은 주님의 백성은 아닙니다(요 3:1-8).  다시 말해 바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행 9장),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던 것처럼(갈 1:13-14), 스스로 성도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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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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