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는 “교만은 죄라는 건물의 기초 중에서도 가장 낮은 부분에 놓여있으며 그 일을 하는 방법이 가장 은밀하고 속임수가 많으며 찾아내기가 어렵다”라고 말했고, C. S. 루이스도 “우리 안에 교만이 많을수록 그만큼 다른 사람 안에 있는 교만을 싫어한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모든 죄 중에서 교만이 가장 위험한데 그 이유는 그것을 탐지해 내기가 어려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교만한 사람들을 찾으라고 한다면 백성들을 가르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로 이들의 교만이 얼마나 은밀한지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위대하게 여기면서도 자신들의 그러한 교만의 죄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마 23장). 성경에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대적하신다고 말씀하시는데(벧전 5:5), 사실 우리도 종종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교만한 모습을 보지만 나 자신 안에 있는 교만에 대해서는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마 7:1-5).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은 “교만”이라고 부르지만 나에게 있는 것은 “진리의 말씀에 대한 관심” 혹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이라고 포장해서 말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교만이란 무엇일까요? 이 교만에 대해 성경은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위대하게 여기는 것과 자신을 높이려는 욕구인 동시에 태도라고 보고 있는데(사 14:12-14), 그중 가장 좋지 못한 형태의 교만은 “종교적인 교만”입니다. 사실 기독교의 본질은 인간이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분 모든 면에서 무한히 우월하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고개를 “푹” 숙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종교인들이 얼마나 교만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분명한 예를 들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눅 18:9). 이 비유의 핵심은 종교성이 강한 바리새인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기뻐한 것이 아니라 그분에 대한 자신의 헌신을 기뻐했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자기를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게 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눅 18:9-14). 이렇게 종교적으로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눅 16:15), 하나님의 생각이 자기와 같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멸시하기 위해 성경지식을 가지고 상대방을 저주하거나 무시합니다(요 7:45-49).
이렇듯 종교적인 교만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태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월하게 여기신다고 믿는 믿음이기도 합니다(마 6:1-2). 이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는데 고린도에 많은 신전들이 있었지만 살아계신 성령의 전은 고린도교회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만일 누구라도 주의 성전을 파괴하려 한다면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경고합니다(고전 3:17). 그렇다면 하나님의 교회에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볼 때 한 부류의 사람으로 그것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고전 3:18-21). 사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알며 그것을 어떻게 바로잡아 줄 것인가를 아는 사람들이지만 문제는 이들이 교회 밖에 사람들보다 교회에 더 심한 해를 끼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자신의 지식과 헌신과 열심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입니다(롬 2:17-24).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이미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진지하게 그분의 의견을 묻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언젠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종교 지도자 바리새인들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기분을 상하게 한 일로 인해 걱정을 했던 것 같습니다(마 15:1-13). 그러나 예수님은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5:14). 예수님은 자신이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려고 오셨다는 말씀을 하셨는데(눅 4:18), 사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실 것 같지 않는 말씀이지만 주님이 하신 말씀을 주의 깊게 살려보면 그분이 바리새인들을 배격하신 것은 그들이 소경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눈먼 인도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마 23:15). 그러니까 눈먼 사람이 진리에 눈을 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진리를 눈앞에 두고 스스로 소경되기를 원했기에 예수님은 그들을 배척하신 것입니다. 이렇듯 다른 죄와는 달리 종교적인 교만은 눈과 귀를 멀게 만들고(요 5:37),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해 성령을 거스리거나 대적합니다(마 12:28-32, 막 3:22-30, 눅 11:14-23, 12:10, 행 7:51).
예수님은 사마리아의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의 좋지 못한 신학이나(요 4:20), 부도덕함을 보고도 그 여인에게 손을 내미는 일을 금하지 않으셨고(요 4:18),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까지도 망신을 주거나 멀리하지 않으셨지만(요 8:1-11), 바리새인들의 교만과 소경됨은 그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고전 8:2), 예수님은 그 사람을 무지 안에서 은밀한 것을 심판하실 날까지 내 버려두실 것입니다(롬 2:16). 이것은 고대시대에 주어진 경고로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이러한 경고를 주기 700년 전에 이사야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라고 말합니다(사 5:21). 아마 예수님께서 하신 가장 무서운 말씀은 로마서에 나오는 말처럼 “그대로 두어라”일 것입니다(롬 1:24, 26, 28). 세상의 구주로부터 내버림을 당한 것보다 더 비참한 운명은 없을 것이고 지옥의 궁극적인 고통은 뜨거운 불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의 부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종교적으로 교만하거나 평생을 배워도 다 못 배울 성경지식을 가지고 무엇인가 안다고 떠들어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두실 것이며 우리는 그 분의 음성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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