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 Bruce는『열 두 제자 훈련』에서 “하나님의 일에 뛰어 들어 열매를 남긴 위대한 사역자들은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고난의 인물들인 까닭이다. 세상의 증오와 멸시를 받는다는 것은 도덕적 위대함과 성령의 능력을 소유한 대가이며 다르게 표현하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친구들’에게 주신 특권 중 하나이다”  이 말의 의미는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겪는 것은 필수적이고(요 15:18-20), 자신들의 생명보다 더 사랑했던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세상으로부터 고난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요 16:1-3).  그리고 사도 바울이 쓴 신약 성경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도에게는 ‘특징’과 ‘표징’들이 있는데(마 10:1, 막 6:7, 행 2:43, 5:12, 6:6, 8:14-17, 19:6, 고전 12:12), 이러한 특징과 표징들은 다른 하나님의 사역자들 중에 사도는 아니지만 소유할 수 있으며 만약 사도라고 하면서 이런 특징과 표징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들을 ‘사도’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고후 11장).  따라서 사도적 직임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는 누구에게든 해당하는 어떤 일반적인 특별한 특징과 표징이 있다는 것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는데(눅 9:1-11),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을 ‘사도’라고 말하면서도(계 2:2), 이러한 특징이나 표징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사도적 소명이 참된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며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먼저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사도의 표징들에 대해(행 5:12), 바울은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첫 번째 표징은 사도의 ‘고난’으로(고전 4:9-13, 고후 4:7-12), 이 고난당하는 목적은 고린도후서 4장7절에 제시되어 있는 것처럼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으로(고후 6:3-10), 그 어느 누구도 질그릇 같은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그 질그릇을 사용하시는 그분의 능력을 믿게 하기 위하여(딤후 2:20-21),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오해받는 것과 보호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고난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고후 12:7).  다시 말해 이들에게 주어진 능력의 위대함을 통해(벧후 1:16-18), 사람들에게 영광이 돌려지는 것이 아니라(행 3:12), 이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려지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반복해서 사도들이 단지 인간이고 나약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고후 12:9-10).  그러므로 신약성경에 따르면(행 14:22), 고난과 박해를 깊이 알지 못하는 사도들을 생각하기란 불가능하며(고후 11:23-33), 이것을 기억한다면 오늘날 자신을 ‘사도’라고 주장하면서 참 사도로서 고난의 흔적이 없거나 사람들을 통해 대접 받기만을 좋아한다면 사도라는 말을 삼가 해야 하고(갈 6:17), 성경에 보면 죽을 것 같은 고난을(고후 1:8-9), 사도들은 누구나 경험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요 21:18).

 

두 번째 표징은 사도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비밀을 보는 특별한 통찰력으로 이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엡 3:1-6)과 ‘경건의 비밀’(딤전 3:16), 그리고 ‘이스라엘 회심에 대한 비밀’(롬 11:25-32)을 보는 거룩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바울은 그가 사람들에게는 말하도록 허락되지 않았던 환상을 보고 계시를 들었다고 말합니다(고후 12:1-4, 7).  세 번째 표징은 사도의 흠 없는 ‘성결성’이고(고후 1:12, 2:17, 4:2), 네 번째 표징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선포할 때 ‘표적’과 ‘기사’들이 따랐는데, 사실 예수님께서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힐 것임을 사도들에게 약속하셨고(눅 24:49, 행 1:8), 이것은 열두 명(행 2:43, 5:12)과 이후에 나온 사도들의 사역에도 가득했습니다(행 14:3, 15:12, 롬 15:19, 고후 12:12).  물론 표적과 기사는 사도 사역의 표징이지만 스데반(행 6:8)과 빌립(행 8:6)도 그러한 사역을 행했기 때문에 그것이 단지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유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막 16:17-20).  마지막으로 사도의 권위로 열두 명의 제자들에게는 귀신과 모든 질병을 물리칠 권위가 주어졌는데(마 10:1, 막 3:15, 6:7, 눅 9:1), 이 권위 역시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유일한 것이 아니었는데, 예수님이 칠십 인을 보내실 때 그 권위가 그들에게도 주어졌고(눅 10:19), 마가복음 9장38-41절에 언급된 익명의 사람에게도 분명히 귀신들을 꾸짖고 물리칠 권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오늘날 스스로 ‘사도’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사역에서 위에 열거한 사도적 표징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는 그 직임에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고후 12:12).  그리고 이상의 것들이 참된 사도들의 표징이었다면 그것을 모방한 거짓사도들이(계 2:2), 초대교회처럼 오늘날에도 존재할 수 있는데 그것을 분별하는 한 가지 매우 단순한 방법은 참된 사도는 건전한 성경적 기초, 즉 하나님의 말씀 위에 새 일을 개척해 나가고 삶의 열매가 있으며(마 7:20),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엡 2:20), 반면에 거짓사도는 분열, 분쟁, 그리고 잘못된 가르침으로 교회를 허물어뜨리고 어지럽게 만듭니다(딤전 4:1-3).  Gordon Lindsay는 참된 사도사역에 대해 『Apostles, Prophets and Governments』에서 “진정한 사도들은 자신들의 사역에서 겸손함이 나타난다. 그들은 자신들의 직임을 공적으로 선포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행하는 역사로써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사역의 직임을 나타낼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사도라고 부르지 않고도 사도의 사역을 행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먼저 사도의 사역을 행하면 그의 사역은 자연스럽게 인정받게 됨을 그는 알게 될 것이다”  John Eckhardt 역시 『The Ministry Anointing of the Apostle』에서 “자신을 사도라고 사람들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 만일 당신이 사도라면 설교하고 가르칠 때 그 은사가 분명히 나타난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참된 사도는 다른 사역의 은사들 위에 군림을 하지 않을뿐더러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검증된 다른 복음사역자들에게 자신의 사역을 복종시키는데(갈 2:1-2), 그는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의논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행 9:26), 적어도 17년 이상 사역에 몸담아 오고 있었습니다(갈 1:18, 2:1).  쉽게 말하면 바울은 신학교를 갓 졸업한 목회 초보자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전파한 것에 대해 여전히 명성 있고 견고한 믿음의 사역자들과 의논하는 겸손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갈 2:2).  만일 바울이 자신이 받은 계시를 검증받고자 사역자들에게 제출할 필요가 있었다면 오늘날 스스로 ‘사도’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더 많은 검증을 받아야 하고,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을 사도라고 말하면서 말씀에 대한 계시를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공적으로 가르치거나 설교하기 전에 먼저 영적으로 판단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며(롬 14:4), 그 사람이 가르치는 것과 설교하는 것을 판단하는 것인데(고전 14:29), 만약에 판단 받는 것을 싫어한다면 그는 거짓사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면에 있어 바울은 자신이 받은 계시와(갈 1:12), 사도로서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대해 올바르고 성경적으로 건전한가를 판단받기 원했던 것이고(행 17:11), 그것이 바울이 사역에 오래 몸담아 옴으로 이미 많은 경험을 한 예루살렘의 유대 기독교 지도자들과 사도들에게 자신이 받은 계시를 나누었던 이유였습니다.

 

오늘날도 사도가 존재하는가에 대해 많은 그리스도인은 아직도 자신들을 은사중단론자로 여겨 1세기 교회 가운데 주어졌던 성령의 은사들은 사도시대가 끝났고 신약성경이 완성된 시점에서 그 사용이 중단되도록 하나님이 계획하셨다는 입장을 고수합니다.  그래서 “사도를 속사도시대의 직임으로 보기보다 하나의 전문용어로 보는 편이 낫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늘날 사도적 사역이 존재한다는 점은 인정하나 사도 직함은 더 이상 사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초대교회의 근간을 이룬 사도직임은 종료되었지만 사도의 은사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여전히 계속 부어지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사도에 대해 많은 논쟁과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에 거짓사도가 있었다는 것은(고후 11:13-14), 오늘날도 하나님이 세우신 참된 사도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데(롬 11:13, 고전 12:28),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도의 명칭이 아니라 사도로서의 나타나는 ‘표징’과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누군가 스스로 사도라고 말하면서 위에 열거한 표징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자칭 사도’일 수밖에 없고(계 2:2), 그 열매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마 7:15-18).  그러므로 이 시대에도 누군지는 모르지만 사도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엡 4:11-12), 그렇다고 아무나 사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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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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