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제자훈련을 잘 가르치시기로 유명한 빌 헐 목사님이 계십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제자훈련을 교회에 접목시킨 목사님들은 이 분이 아주 오래 전에 쓴『‘목회자가 제자를 삼아야 교회가 산다』 라는 책을 안 읽으신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또한 그분은 오래 전에 한국 사랑의 교회에 가서 목회자들을 위한 제자훈련 세미나를 인도하신 분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이 분이 책을 하나 썼는데, 이 책 제목은『‘성령의 능력에 관한 솔직한 대화』입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빌 헐 목사님은 대학교 시절부터 오순절 계통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성령의 은사를 강하게 주장했던 사람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던 분이 캘리포니아에 있는 탈봇 신학교를 들어가고 나서부터 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분이 쓴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2년 뒤 그토록 성령의 은사를 주장하던 나는 성령의 은사가 중단되었다고 믿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풀어서 이야기 하자면 성령의 은사들 즉 방언, 신유, 기적, 그리고 예언과 같은 것들은 이제 교회 안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다. 만약에 아직도 이런 은사들을 활용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싸구려 연기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마귀의 도구로 전락한 자들일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내 주위에 있는 매우 경건하면서도 훌륭한 강해설교자들의 영향 때문이다.” 그 당시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학적 교리에 의해서 영향을 받게 되자 그렇게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고 주장하던 분이 하루아침에 성령의 역사를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고 그런 사역을 하는 사람들을 마귀의 도구로 전락한 자로 평가해 버린 것입니다. 이렇듯 누구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탈봇 신학교의 공식적 입장은 전통적인 성령은사 중단주의입니다. 은사 중단론이란 특별계시인 신약 정경 완성과 더불어서 모든 예언적 은사가 중단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즉, 사도와 예언자의 터 위에서 교회가 세워졌으므로(엡 2:20), 사도의 역할이 끝난 것처럼 예언자 역할도 A.D. 1세기말에 종료되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한다면 성령의 은사는 초대교회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사 중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상당수의 세대주의자들과 개혁주의 신앙과 언약신학 노선에 서있는 자들로 많은 신학자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사람들은 로버트 레이몬드와 리처드 개핀을 들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은사 중단론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성령의 은사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목회자 중 한 분이 존 맥아더 목사님이신데 저도 이 분의 책이나 설교를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물론 드물긴 하지만 탈봇 신학을 한 목회자들과 신학자들 중에 성령의 사역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무튼 빌 헐 목사님이 탈봇 신학교 시절 주제 강의 시간에 늘 풀리지 않는 문제가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고린도전서 12-14장에 대한 주해로, 헬라어로 찾아봐도 성령의 은사가 중단되었다는 것이 설득력이 없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신학대학원에 가서 공부하면서 다시 주님의 은혜로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 은사를 체험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빌 헐 목사님이 은사에 대해 결론짓기를 오늘날에도 성경에 기록된 모든 은사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결론을 맺습니다. 물론 이 분이 은사에 대해서 있다 없다 말 안 해도 성경에 기록된 은사는 인간의 이론이나 생각에 좌우되지 않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여기서 대한 나의 솔직한 고백을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저 또한 장로교 칼빈주의 신앙을 고수했고 엄격한 개혁주의 신학을 공부를 했던 사람입니다. 장로교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개혁주의 칼빈 신앙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칼빈의 5대 교리에 입각해서 성경 66권 밖에 벗어나서 절대로 가르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성경만이 우리 삶의 모든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A.D. 1세기말에 모든 은사가 끝났다고 배운 나에게 있어서 성경에 기록된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는 그다지 환영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교회에서 예언을 하려고 하거나 환상을 보고 꿈을 꾸었다고 하면 “지금 성경 66권이 다 기록되었는데 무슨 예언이고 환상이고 꿈이냐, 그것은 모두가 잘못된 것이고 마귀가 주는 것이고 개꿈에 불과하다”라고 책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이렇듯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무지한 것은 내 자신이 이미 개혁주의 칼빈 신앙으로 무장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틀 안에 갇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신랄하게 비판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 또한 성경을 연구하면 할수록 내 마음 속에 채워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말씀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이었습니다. 현재 내가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사역을 균형 잡히게 강하게 강조하는 이유는 그럴만한 특별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들으시면서 저의 개인적인 체험이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오해가 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도 자신의 체험을 간증하지 않습니까?(행 22:1-29, 26:1-32, 고후 12:1-10).
몇 년 전에 목회를 관두려고 마지막 금식에 들어갔을 때 남들이 말하는 “성령의 불” 받는다는 것을 내 자신이 뜨겁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성령의 불 받아야 되! 성령의 불, 그래서 무슨 불이 있다는 거야" 라고 그다지 예사롭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불이 나에게도 임한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은혜스러운 것이었고 거의 서너 시간 내내 울며 회개했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주님의 임재와 은혜와 사랑을 몸으로 느낀 것입니다. 체험을 해보지 못하는 분들은 이해가 안 될 것이고, 이런 은혜를 체험하면 개혁주의고 보수주의고 따지지 않게 되고 사실 이런 것들은 머리만 아프게 만들지 백문의 불여일견이라고 교리를 가지고 떠들 것이 아니라 한번 불 받으면 본인 자신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것이 목회사역 속에 나타날 때 말씀의 토대위에 선 성령의 역사하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성령을 빼놓고 말씀만 강조하면 죽은 정통주의 신앙생활을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그의 책『부흥』에서 죽은 정통주의는 교리적으로 지극히 정통이지만 전혀 생명이 없고 인간이 만든 제도에 묶여서 예배에 생명력이 없어 “성령을 소멸”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딤후 3:5). 그러면서 그는 기독교 역사에서 이단 못지않게 가장 위험한 것이 “죽은 정통주의”라고 말합니다. 또한 말씀을 빼놓고 예언과 환상과 치유와 은사를 너무 강조하면 신비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신앙촌의 박태선과 이장림 같은 사람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께 계시를 받았는데 자신이 꼭 하나님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구약의 예언과 신약의 예언의 차이를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를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진짜로 믿는다면 성경에 기록된 초자연적인 능력이 지금도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사역의 모델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에서 말씀과 성령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또한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마 11:4-5, 막 1:21-27), 말씀을 공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은 지식에 불과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요 15:26, 16:13), 모든 성령의 역사는 말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엡 6:17). 또한 그 말씀을 믿는다면 그 말씀에는 능력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고전 4:20). 이 말의 의미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진리라면 그 역사는 지금도 믿는 자 속에 일어납니다(히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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