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중에 서울에서 중형교회 담임목사로 사역을 하고 있는 예장합동 목사와 지방 대도시에서 대형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는 예장통합 목사가 있습니다.  이들을 만나면 주로 가족과 목회에 대한 이야기, 혹은 감명깊게 읽은 책과 오늘날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와 은사에 대한 주제로 대화가 이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민감한 주제(은사)를 놓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들 목사로부터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모두가 은사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심한 거부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최선을 다해 충성스럽게 사역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이구동성 말을 합니다.  사실 이들을 통해서 하나 깨달은 것은 중대형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사람들은 다른 목회자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자제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목회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목사들 중에 목회는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허구헌날 형제를 비판하고 정죄하는 가운데 이단 사냥질만을 업()으로 일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목사 밑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영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비판적인 목사 밑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치고 영혼이 메마르거나 병들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말에 비위가 상하는 목회자들이 있겠지만, 전도사 때부터 개척을 시작해서 목사가 되어 두 번의 교회개척을 통해 20년 넘게 사역을 해 보았기 때문에 누구못지 않게 구멍(?)가계 수준의 목회가 어떠한지를 익히 알고 있습니다.  사실 오랜 기간 동안 목회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다른 목회자에 대해 판단하거나 비판적인 일에 몰두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목회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부정적이고 비판의 영을 가진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추하고 더러운 모습은 보지 못하고 입만 열면 남의 허물을 찾아내려고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동원하는 가운데 사악한 궤변을 통해 상대방을 매장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하게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이런 목사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구멍가계 수준의 목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확신컨대 오늘날 이단사냥질 하는 사람 중에 자신의 목회에 충실한 목회자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거의 밑바닥을 기고 있거나 몇 명, 혹은 몇 십명 놓고 자신이 무슨 대단한 목사인 것처럼 설교 같지 않는 설교,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설교 원고를 가지고 앵무새같이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마담 수준의 이야기로 양들을 호도하는 수준입니다.  이런 것도 모르고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 목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성경적 목사로 생각하는 순진한 양들이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목자에게 양을 맡길 때는 형제를 비판하는 부정적인 목사에게 맡기기 보다는 모세처럼 입이 뻣뻣해 말에 능하지 못하더라도 맡겨진 양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복음에 열정적으로 생명을 거는 목자에게 맡길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사울 왕은 늘 살기가 등등해서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들과 자신의 주변에 있는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들에게 많은 해를 끼쳤던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사울에게 있던 사람들을 빼내어 다윗에게 보내주었습니다.  조금 풀어서 말하자면 사울 왕은 하라는 목회는 안하고 허구헌 날 사단의 충동질 받아 다윗을 비롯해서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을 죽이려고 날뛰다가 비참하게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반면 다윗은 하나님을 늘 두려워 하는 가운데 적은 수의 백성들을 끝까지 충성스럽게 돌보았기 때문에 나중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 마디로 주의 종이 서고 넘어지는 것은 주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형제를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14:4).  그런데 오늘날 이단사냥질을 하는 사람들은 먹이를 만난 더러운 Hyena처럼 교회를 하나로 화합하기 보다는 논쟁과 분열, 인신공격과 덕스럽지 못한 비방을 통해 난타전을 벌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궁금한 것은 광견병에 걸린 미친 개처럼 날뛰는 이 사람들에게 누가 이단사냥질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느냐는 것입니다.  분명 예수님이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사이비 이단제조자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이비 기질을 가진 사람의 전형적 사고방식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획일화를 강조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반영하는 구성원적(3:11), 인종적(5:9), 은사적(고전 12:12-27), 다양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이비 기질을 가진 사람은 의견의 다양성시각의 다양성’, 그리고 경험의 다양성을 말살하기 때문에 공장에서 규격화된 제품을 생산하듯 앞뒤가 꽉 막힌 숨통이 조여오는 듯한 자신이 배운 신학만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무식하게 우겨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둘째, 흑백 논리가 강합니다.  이런 사람은 옳고 그름의 논리적 배타성을 자신이 배운 신학 안에서 유리한 방향으로 자의적 해석합니다.  그래서 개인이나 집단 그리고 옳고 그른 측면이나 요소가 혼재(混在)해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을 뿐더러 항상 자신은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억지주장을 내세웁니다.  셋째, 개인적 나르시즘을 강화합니다.  이것은 자신만이 의롭고 올바르며 정당하다는 것을 스스로 세뇌시키는 가운데 이를 통해 자기 생각속에 그릇된 자부심을 고취시킵니다.  마지막으로 피해의식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만이 성경을 가장 바르게 해석하고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외부에서 핍박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과대망상증과 피해망상증을 가진 환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단 사냥질을 일삼는 무경험자들(성경에도 없는 권사 직분을 가진 사람과 조폭처럼 겁박하는 목사)의 글을 읽어보면 참으로 한심할 때 한 두번이 아닌데, 이들은 흑백 논리가 강해서 자신은 정통이고 상대방은 이단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제 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특히 John Wesley를 이단으로 매도한 바른믿음의 정이철이라는 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피조물인데, African wild dog의 습성을 가진 것처럼 닥치는대로 물고 늘어지는 좋지 못한 동물의 기질을 가졌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물론 본인 스스로가 다른 목회자를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타나는 열매를 보면 그 배후가 귀신에게 순간순간 충동질 받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분의 신학과 신앙이 많이 왜곡되고 비정상적인 이유는 이미 고인된 목회자들(옥함흠, 하영조, Peter Wagner등등)의 신앙을 뒷담화 치기 때문입니다.  왜 살아있을 때 맛짱 토론을 벌이지 못하고 이들이 죽고 난 뒤에 무슨 큰 죄를 지은 죄인인 것처럼 부관참시(剖棺斬屍) 하느냐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해 영이 비틀어져 있고 중증 환자와 같은 병든 신학을 가지고 천방지축 날뛰는 이 분이 이단 사냥질을 하든 이단 제조자이든 상관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뒤에서만 물고 늘어지지 말고 정식적으로 박영돈 교수와 김세윤 교수에게 정중하게 공개토론을 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사족이긴 하지만 개() 훈련사의 말에 의하면 겁이 많은 똥개일수록 집에서는 잘 짖어대는데 막상 싸움에 있어 꼬리를 내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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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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